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라
그 다음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라”고 해서 ‘온유’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요”라고 했는데(마 5:5), 온유한 자의 분깃은 무엇입니까? 온유는 주께 온전히 맡기는 사람의 생활 태도요 그가 서게 되는 단단한 땅입니다. 그 땅에서는 무엇이 와서 공격해 그를 넘어뜨리지 않습니다. 그는 흔들리는 불안한 세계에 살지 않습니다.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세계에 살지 않습니다. ‘이곳은 내가 설 땅이다. 여기는 내가 살 수 있는 땅이다’ 하고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런 땅에서 삽니다. 온유한 자는 이렇게 자기가 살 땅을 가지게 될 텐데, 그런 땅을 가지는 길은 온전히 주님께 맡김으로 주님 안에서 안식하는 데 있습니다. 그 땅은 만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안심하고 살아가는 이것이 온유한 사람의 징표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안전한 땅을 얻어 살게 되는 까닭에 예수께서 너희도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서 배워라. 또 내가 가르치는 그것대로 살아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다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온유하심을 친히 보이시면서 우리에게 “너희들도 짐을 지려면 너희가 안전히 쉴 수 있는 땅, 공격을 받아 동요하는 불안한 땅이 아니라 튼튼해서 안전한 땅, 만세 반석이신 주님의 품안에, 주님의 튼튼한 보루 안에 살아라” 하신 것입니다. 온유라는 말 가운데 그런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런즉 예수께서는 “여기는 튼튼하다. 너희는 불안한 세상에서 안전을 얻기 위하여 갈등하고 싸워 가면서 사느라고 그렇게 애를 쓰지 말고 내게 와서 안식을 얻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맡겨 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또한 평안을 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결과로서 “내가 너희에게 쉬게 하리라고 약속한 말대로 참평안을 너희가 얻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 참평안은 주께서 맡기시는 그 짐을 지고 살아갈 때 얻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고 멍에를 지워 주시듯이 우리에게 그 교훈에 의해서 짐을 능히 잘 지고 갈 수 있게도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 짐도 안 지고 아무 멍에도 안 메고 그냥 죽은 사람같이 되어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것은 참으로 목표를 향해서 가되, 무겁지 않은 가벼운 짐을 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이 교훈이 너희를 지혜롭게 해서 너희로 하여금 가장 쉽게 짐을 지고 가게 만든다”는 거룩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는 그 말씀은, “자기가 스스로 노고를 하고, 자기가 어떻게든지 스스로 종교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보겠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다 주의하고 정신을 차려라. 내 가르침은 그것이 아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다. 너희에게 설 땅을 주고 안식을 주는 이는 나 그리스도이다. 나는 겸손하다. 내가 너희에게까지 내려가서 너희가 설 땅과 안식을 다 준다. 그러니 내 멍에를 메고, 내가 너희한테 하는 교훈을 잘 받고 나한테서 배워라.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너희가 해라. 그러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너희 마음에 안식을 얻고 평안을 얻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 것이다. 왜냐하면 내 멍에는 친절하다. 내 가르침은 자상하고 너희 마음에 부드럽게 임한다. 그리고 내 짐은 가볍다. 내가 너희에게 하라고 하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니다. 너희 자신이 지려고 하면 질 수 없지만, 성신님을 의지해서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온전히 다 맡기고 지면 자연스럽게 지게 될 것이다. 계명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김홍전, “예수님의 행적 3”, 168-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