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신앙 고백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늘 이 땅에 있어왔다.
거기에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천국(天國)의 역사.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점진적으로 계시하셨고,
그 계시의 정점이자 총체는 아드님 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현현(顯現)하신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물려받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물려 받은 신앙이
역사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실은 2003 년 여름 부터이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하나의 보편의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내가 앞 세대의 성도들과 뒷 세대의 성도들과 연락(聯絡)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신앙고백, 신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주님께서도 ‘내가 신앙 고백의 터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뚜렷하게 표방하지 않는 교회가 많은 것을 좋다고 생각해야 할 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단순하게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조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다’ – 이것은 실은 매우 애매모호한 말이다. 성경을 믿기는 이슬람교도 신구약 성경을 다 믿는다고 한다.
이러한 것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성령님께서 교회를, 주님의 양무리를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 볼 수 있다. 신앙고백에는 매우 뚜렷한 역사가 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진리를 흐리는 세력들에 대하여 뚜렷하게 ‘이것이 교회를 이끄시는 성령님께서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바이다’하고 천명한 신앙 고백들이 있다.
그러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아는 것이 ‘사도신경’이요, 가까운 역사 속에서 중요한 신조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가 있다.
시대가 마지막의 그 날을 향해 가면서 참 교회에 대한 공격은 더욱 공교해지고 있다. 성도는 예수님 몸의 지체로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일분자로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소위 포스트모던으로 넘어오면서, 신앙을 개인의 수양으로 생각하는 물결이 도도하게 휩쓸고 있다.
주님은 양을 이끄시되 양을 무리로 인도하신다. 무리로 인도하시되 양 하나 하나의 이름을 아신다.
한 개인이 성경을 읽고 열심히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의 도리들을 무난히 깨우치리라 생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귀를 기울여 역사 속에서 성령님께서 교회에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들어보자.
앞으로 신앙 고백을 뚜렷이 취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