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의/불의’라는 말이 갖는 의미, 그리고 하나님 나라
지난해 많이 읽힌 책 중 하나가 샌델 교수가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이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인데, 왜냐하면 실상 한국 사회에서 ‘정의/불의’ 하면 ‘착한 짓/나쁜 짓’ 정도의 의미로 그동안 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루뭉술한 개념으로 남아 있는 것의 문제점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사회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유난히 ‘정의/불의’라는 말이 난무하는 것을 보지만, 여전히 ‘착한/나쁜’ 정도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체 쓰이는 경우가 많다. 유력 후보가 두 명 있는데, 양쪽 지원자들 가운데서 상대편 지원자를 ‘불의의 자식들’로 묘사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북한과 친하게 지내고 나라를 팔아먹을 놈들’ 혹은 ‘자기 이익을 위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과 같은 패’라고 여기는 것이 그 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나쁜 놈들’이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물으면 ‘아니, 그게 설명이 필요하냐? 딱 보면 상식적으로 모르겠냐?’ 정도의 대답이 돌아온다.
내게 더 우려가 되는 것은 ‘정의/불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응이 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때이다. 우리는 ‘그 나라의 의’를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 나라’에서 무엇을 의로운 것으로 보고 무엇을 불의로 보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 이 세상에서 돌아다니는 정의 개념 정도를 붙들고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최악의 단계는 아니다. 최악의 단계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착한 것을 이 세상의 ‘정의’ 개념을 가지고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이다. 성경의 정의와 선을 가지고 세상의 도덕과 윤리를 비판하지 못하고 역으로 성경을 재결할 때,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약을 갖다 버린 사람 처럼 희망이 없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