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과 생명의 문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5 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5 문답은 주기도문에 나타난 바 일용할 양식으로 표현된 생명의 문제에 관한 문답이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이다.)
125문: 넷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우리의 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려 주시며, 그리하여 오직 주님이 모든 좋은 것의 근원임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복 주심이 없이는 우리의 염려나 노력, 심지어 주님의 선물들조차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함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게 하옵소서.”
아래는 이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4, 201–202 쪽).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간구는 사람의 생명이 일용할 양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기도이고, 또한 우리가 일용할 양식도 구하여서 얻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시는 이유는 “오직 주님이 모든 좋은 것의 근원임을 깨닫게”(125문)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시고 우리는 주님께 구하여서 받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를 너무 낮추어서 말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우리 식구가 세 끼 밥을 먹고, 또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쯤은 내 힘으로 다 할 수가 있다”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의 사람 구실은 하고 산다는 자부심이 있는데, 교회에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고 가르치면 자기를 너무 낮추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라면 그 정도의 기본적인 것을 놓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좀 더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중요한 데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생활의 문제’와 ‘생명의 문제’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생활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여서 ‘생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것으로 잘 먹어도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면 그 순간에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고,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잘 먹고 건강식을 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진노를 보이시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생활의 문제’를 놓고 보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생활의 문제를 풀고 살 수 있습니다. 조금 더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이만큼이라도 사회적 안정을 주시니까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여 집안 식구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회에 진노를 보이시고 사회가 불안정하면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은행에 많은 돈을 저축한 사람이라도 국제적인 통화 위기가 와서 은행이 제 구실을 못하면 손을 쓸 수도 없습니다.
한국은 최근 대통령 선거 후 선거에서 이긴 쪽이나 진 쪽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미래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쥐고 지금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손 아래서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