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은 함께 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92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92문은 십계명에 관한 것이다. 십계명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법령으로서, 그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그 서두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선언하신다. 십계명을 지켰기 때문에 너희가 내 백성이 아니라, 너희가 내 백성이니까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와 같이, 복음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4).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이 말은 구약의 제사법과 관습법 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폐기되었다. 하지만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알려준다. 이것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이 소위 반법주의(antinomianism)이다. 반대로, 율법에 대한 순종은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데, 그렇지 않고 구원 혹은 칭의를 위한 조건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율법주의(nomism)이다. 반법주의와 율법주의 모두 잘못된 가르침이다.
아래는 이와 관련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
우리는 그 구원과 십계명 사이의 ‘순서’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애굽에서 구원하기 전에 십계명을 주셨다면 이것은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십계명을 주시는 뜻은 지키라는 것인데, 구원 전에 주셨으면 이것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순서를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순전히 은혜로 구원을 하신 다음에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먼저 복음을 선언하시고 그 다음에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십계명을 주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서문에서 먼저 자기를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로 선언하시고 난 후에 열 마디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서문은 ‘복음’이라 할 수 있고, 그 다음 열 마디의 말씀은 ‘율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십계명을 주실 때에 서문과 십계명 열 마디의 말씀을 나누어서 주시지 않고 합하여 한꺼번에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그 순서대로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합해서 가르쳐야 되는데 나누어서 가르치면 부분적인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앞부분만 강조하면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아라. 그들은 아무 행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 이것만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율법의 말씀을 무시할 것입니다. 반대로 앞의 서문을 빼놓고 십계명만을 이야기하면, 구원의 위로를 누리지 못하는 율법주의에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합한 것을 사람이 나눌 수가 없습니다.
혼인의 경우에서도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면 안 되지만, 계시하시는 방식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합하여서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의 복음을 선언하시면서 열 마디의 말씀을 주셨으므로, 복음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반드시 언약의 말씀으로 주신 이 열 마디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을 보이며 나아가야 합니다. 단순한 생활의 규칙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오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3』, 61-62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