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 (9)
- 율법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할 것
- 복음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
인류가 아담 안에서 범죄한 즉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언약은 유일한 구원의 언약이다. 그 언약을 아담 이래 믿음으로 지킨 언약의 백성들이 곧 하나 뿐인 보편 교회를 이루고 있다 (율법과 복음 (4) 및 (6) 참조). 그 보편 교회의 믿음 즉 보편적 믿음(catholic faith)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단번에 주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유 3).
물론 이 말이 보편적 믿음의 내용이 정체 되어 있거나 발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믿음의 대종(大宗) 즉 큰 줄기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고, 그 줄기를 둘러싼 세부적인 내용들은 역사 속에서 교회의 신앙고백 가운데 점점 풍성해졌다.
그와 대척적으로 참교회의 신앙고백과 ‘비슷하지만 아닌 것’ 곧 사이비(似以非) 신앙고백 또한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늘 대세는 아니었을지라도, 주류로 내려온 역사적 신앙(historic faith)을 살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상기할 때, 그동안 졸인이 율법과 복음이라는 제목 아래 적은 것들이 역사적인 신앙고백에서 벗어난 것들이라면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 즈음에서 잠시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를 역사적인 신앙고백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일단 가까운 것부터 살펴보자. 거룩한 교회가 그 광망을 드러냈던 역사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뭐니해도 중세 종교개혁 시대이다. 사실 그 당시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다양한 개혁의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직 루터와 칼빈이라는 이름으로 대표 되는 그것만이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이라 불릴 정도로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개혁을 가져왔다. 그 중에서도 칼빈이 활동했던 제네바(Geneva)는 다른 유럽 지역에서의 개혁의 모델이 되었다.12 (그래서인지, 칼빈에 대한 중상모략들은 지금도 버젓이 역사적 사실인 양 돌아다니고 있다.)
개혁교회가 배출한 걸출한 신앙고백으로는 소위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세 문서”(Three Forms of Unity)라고 불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네덜란드 신앙고백, 그리고 도르트 신조가 있다. 영국에서 제작된 웨스트민스터 표준(Westminster Standards):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 및 교회정치는 그 내용에 있어서 하나 되게 하는 세 문서와 대동소이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신앙고백들과 더불어 그동안 ‘율법과 복음’이라는 제목 아래 상고한 내용들을 아래에서 되짚어 본다. 신앙고백 인용 가운데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이다.
율법과 복음의 두 범주
먼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HC]은 율법과 복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HC 2문: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답: 다음의 세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3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4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5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6
위에서 ‘첫째’와 ‘셋째’의 내용은 ‘율법’에 해당하고, ‘둘째’에 해당하는 내용은 ‘복음’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 되는 율법은 복음이 될 수가 없고 오히려 우리의 비참함을 알려줌을 잘 지적하고 있다. 구원을 위해서는 복음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고 감사를 위한 것임을 또한 잘 적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WSC]은 좀 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WSC 3문: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믿을 것은 무엇이며,7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8
위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믿을 것’이라 함은 물론 복음이며,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라 함은 율법이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사실들로 구성 되기에 거기에 합당한 우리의 반응은 ‘믿음’이라고 잘 적고 있다.
은혜의 언약에 드러난 복음
복음은 우리 조상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죄를 범한 즉시 주신 ‘은혜의 언약’ 가운데 있음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HC 19문: 당신은 이것을 어디에서 압니까?
답: 거룩한 복음에서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처음에 낙원[에덴동산]에서 친히 계시하셨고,9 후에는 족장들과10 선지자들을11 통해 선포하셨으며, 또한 율법의 제사들과 다른 의식(儀式)들로써 예표하셨고,12 마지막에는 그의 독생자를 통해 완성하셨습니다.13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은혜의 언약’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쓴다:
WSC 20문: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멸망하게 버려두셨습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오직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어떤 사람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선택하셨고,14 구속자로 말미암아 그들을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건져 내어 구원의 지위에 이르게 하시려고 은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15
칭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뿐만 아니라 그의 순종까지 우리의 것으로 여기시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하시는 칭의의 사실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뿐만 아니라 그의 순종까지 우리의 것으로 여기시는 사실이 있음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주신다’고 표현하고 있다:
WSC 33문: 의롭다 하심이 무엇입니까?
답: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고,16 이로써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17 우리를 자기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18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일이고,19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20
같은 내용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HC 60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까?
답: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만 됩니다.21 비록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고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22 여전히 모든 악으로 향하는 성향이 있다고23 나의 양심이 고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24 그리스도의 온전히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십니다.25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26 오직 믿는 마음으로만 나는 이 선물을 받습니다.27
네덜란드 신앙고백[BC]은 우리의 칭의와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에 관해 무엇이라 고백하는가:
BC 23.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의 의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죄 사함에 있으며, 또한 그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의 또한 발견 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다윗과 바울이 우리에게 전해준 바 선행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이라고 고백한다.28 바울 사도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무상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29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기초를 의지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30 당신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고, 우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시인하며, 우리에게 있는 그 무엇도 혹은 우리에게서 나온 그 무엇도 의지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31 오로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순종 만을 의지하고 거기에 안식한다.32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의 순종은 우리의 것이 된다.33 이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담대함을 주기에 충분하니,34 떨림 가운데 자신을 무화과 잎으로 덮으려 했던 우리 시조 할아버지 아담과는35 다른 방식으로 양심 속의 두려움, 공포, 및 무서움에서 해방이 됨이다. 그리고, 참으로,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그 어떤 다른 피조물을, 아무리 조금일지라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한다면 삼킴이 됨을 받고야 말리라!36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윗처럼 기도해야 마땅하다: “주의 종을 재판에 부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37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수단이지 근거가 아님
방금 읽은 WSC 33문, HC 60문, 그리고 BC 23조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는 믿음을 통하여 입게 됨을 고백하고 있다. 그랬을 때 믿음은 칭의의 수단이 되는 것이지, 칭의의 근거는 아님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HC 61문: 당신은 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까?
답: 나의 믿음에 어떤 가치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실 만한 것은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의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만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가 됩니다.38 오직 믿음으로만 이 의를 받아들여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39
이에 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CF]은 어떤가?
WCF 11.1. 하나님께서 효력있게 부르시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또한 무상으로 의롭다 하신다.40 이는 그들에게 의를 주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각 사람을 의롭다고 여기시고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서 나온 것 혹은 그들의 행실 중 그 어떤 것 때문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다. 혹은 믿음 그 자체, 또는 믿음의 발휘, 아니면 그 어떤 복음적인 순종이라도 그것을 그들에게 의로 전가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과 배상을 그들에게 전가하시기 때문이다.41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의를 받고 또 거기서 안식하는데, 그 믿음은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다.42
WCF 11.3.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 모든 사람들의 죄책을 그리스도는 자기의 순종과 죽음을 가지고 완전히 갚으셨는데, 이 때 그리스도는 당신의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공의에 대한 정당하고 완전한 배상을 그들 대신 실제적으로 이행하신 것이다.43 그래도 그들이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을 무상 은혜라 함은,44 성부께서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주시고45 또 그리스도의 순종과 배상을 그들의 것으로 받으신46 이 모든 것을 그들에게서 아무 것도 찾지 않으시고 무상으로 행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신 것은 죄인들을 의롭다하심에 있어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와 풍성한 은혜가 모두 영화롭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47
복음은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를 위한 것
복음 곧 은혜의 언약이 우리의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까지 약속하고 있음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하심’이라는 표현을 써서 고백하고 있다:
WSC 32문: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이생에서 무슨 유익을 얻습니까?
답: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養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또한 그것들과 함께 오거나 그것들에서 나오는 유익을 얻습니다.48
달리 말하자면 성화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지키심으로 인해 우리 안에서 맺으시는 열매이다. 이 진리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WSC 35문: 거룩하게 하심이 무엇입니까?
답: 거룩하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고,49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온전히 새사람이 되고,50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됩니다.51
성신께서 그러한 성화를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우리의 유일한 위로를 이루는 내용 가운데 하나로 적고 있다:
HC 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살아서나 죽어서나52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53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54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55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56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57 나를 보호하시며,58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59 그러하므로 그분은 그의 성신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60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61
성화는 구원의 필연적 열매이지 근거가 아님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정도 혹은 성화의 정도는 우리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HC 62문: 우리의 선행은 왜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으며 의의 한 부분이라도 될 수 없습니까?
답: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해야 합니다.62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한 최고의 행위라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63
오히려 우리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이며, 그의 성신이 우리를 하나님의 법으로 이끄시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정당한 찬송이자 감사이기 때문임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HC 86문: 우리의 공로가 조금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또한 선행을 해야 합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救贖)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신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덕(恩德)에 감사하고64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찬양받으시기 위함이며,65 또한 우리 각 사람이 그 열매로써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얻고,66 경건한 삶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6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어떤가:
WCF 11.2.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의를 받고 거기에 안식하는 이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수단이다.68하지만 그 믿음은 의롭다하심을 받은 사람 안에 단독으로 있지 않고 언제나 다른 모든 구원의 은혜들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믿음이 아니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69
WCF 16.5. 우리는 최고의 선행으로도 죄사함 또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영생을 받는데 기여할 수 없는데,70 이는 우리의 선행과 장차 올 영광 사이의 격심한 부조화,71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무한한 간격 때문이다 — 우리의 선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보탬을 드릴 수도 없고72 혹은 우리 죄책을 덜 수도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따랐을 뿐이며 무익한 종일 뿐이다.73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선행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성신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인데,74 우리를 통해 나오는 그것은 오염이 되었고 너무나 많은 결핍과 결함이 섞여 있어서 하나님의 엄격한 심판을 통과할 수 없다.75
우리의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과 성화와 관련해 네덜란드 신앙고백 역시 같은 고백을 한다:
BC 24. 사람의 성화와 선행에 관하여.
우리는 참 믿음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신의 사역으로 발생하는 믿음은76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새롭게 하여 새로운 생명 가운데 살게 함을 믿으며,77 또한 죄의 종된 상태에서 해방시킴을 믿는다.78 그러므로 의롭다하심을 얻게 하는 믿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 대해 태만하게 만든다는 말보다 진실에서 먼 것은 없다.79 오히려 그 반대로 참 믿음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사랑함에서 행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를 사랑함 혹은 멸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행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참 믿음이 사람에게서 열매를 맺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곧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종류는 헛된 믿음이 아니라80 성경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표현한 그것인데,81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 가운데 명령하신 일들에 순종하도록 운동력을 불어넣는다.
그러한 순종은 믿음의 선한 뿌리에서 발생하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 성결케 된 만큼,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으로 보신다. 그렇더라도 그것들이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데 조금도 기여를 하지 못하니,8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무런 선행을 하기 전에, 의롭다하심을 받기 때문이다.83 의롭다하심을 받기 전에 선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나무가 좋지 않으면 열매가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84
그러므로 우리는 선행에 힘쓰지만 그것을 우리의 공으로 삼으려 함이 아니다 (우리의 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가?). 아니, 우리의 선행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채무가 생기기 보다는 도리어 하나님께 우리가 빚을 지는 것이니,85 이는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해, 우리가 의지를 갖고 실천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86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자: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87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행에 대해 상을 베푸신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데, 당신이 주신 선물에 영예를 입혀주시는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88 더욱이, 비록 우리가 선을 행해도, 우리는 우리 구원의 근거를 거기서 찾지 않는다89 — 왜냐하면 우리의 행실 가운데 육신의 사욕으로 오염 되지 않고 죄책이 없는 것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90 설령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배격하실 이유는 한 번의 범죄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 구주의 고난과 죽으심의 공로에 안식하는 자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늘 의문 가운데 있을 것이고, 불확실함 속에 흔들릴 것이며, 가련한 우리 양심은 끊임 없는 번뇌에 휩싸일 것이다.91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믿음으로 지키는 거룩한 보편적 교회
위의 BC 24조의 내용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무슨 공덕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빚을 지는 것임을 고백하는 부분이 눈에 띤다. 오직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신앙이 빛나는 대목이다.
아담 이래로 구원에 관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믿고, 그렇게 믿음으로 언약을 지킨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고, 이것이 인류 역사 위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곧 보편 교회이다. 그 보편 교회에 관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HC 54문: “거룩한 보편적 교회”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92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93 모든 인류 가운데서94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95 교회를96 참된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97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98 자신을 위하여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심을99 믿습니다. 나도 지금 이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肢體)이며100 영원히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101
율법과 복음 기획물
- 율법과 복음 (1)율법과 복음의 범주를 설명한다.
- 율법과 복음 (2)율법의 범주 아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오직 복음의 사실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세운다.
- 율법과 복음 (3)복음은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맹세하신 구원의 언약이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기쁜 소식이다.
- 율법과 복음 (4)복음 약속,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은 우리 조상 아담이 죄를 범하여 죽게 된 직후 하나님께서 즉시 베푸신 언약으로서, 아담 이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의 언약이다.
- 율법과 복음 (5)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은 우리의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 까지 약속하고 있다. 그 영원한 약속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성부께서는 맹세를 하셨고, 성자께서는 자기 피를 가지고 보증이 되시며, 성신께서는 우리를 보전하신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에게서 마친다.
- 율법과 복음 (6)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언약을 지키시는데 사람 쪽에서 근거를 찾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근거를 찾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언하신 은혜의 언약을 사람이 ‘지키는’ 것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 율법과 복음 (7)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그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그 믿음 자체가 사람이 일궈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 중에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헛된 믿음이 있다.
- 율법과 복음 (8)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맹세하신 은혜의 언약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약속이 영원한 약속이 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골고다에서의 단 번의 제사로 영원히 당신의 백성들을 온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는 하나님과 멀어질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그 능하신 팔로 행하신 구원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따라간다. ...
- 율법과 복음 (9)우리 시조 할아버지 아담이 범죄한 직후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복음 곧 은혜로운 구원의 언약을 베푸셨다. 아담 이래로 믿음으로 그 언약을 지킨 무리들이 곧 하나뿐인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이다. 그 보편적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단번에 받은 믿음(유 3)의 내용 앞에 우리의 신앙을 비춰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동안 ‘율법과 복음’이라는 제목 아래 상고한 것들을 역사적인 신앙고백과 비교해 본다.
“A little bit of the world’s history was enacted in Geneva.” (Ludwig Häusser) 번역: 세계사의 일부분이 제네바에서 상연되었다. ↩
Genève est une des plus petites et des plus héroiques cités de l’Europe. Si l’on avait voulu prédire à l’avance son histoire, elle eût paru incroyable. Genéve a défié non-seulement le duc de Savoie et le pape, mais l’empereur Charles-Quint, et il a bravé son rival non moins puissant, François Ier. Malgré tous, cette ville a conquis premièrement ses libertés politiques, puis ses libertés religieuses, et cela non-seulement pour elle-même, mais pour tout le nord de l’Europe. Plus d’une fois Genève a été les Thermopyles du protestantisme et de la liberté, courageusement défendues par une petite troupe de héros, qui n’était guère plus nombreuse, si on la oompare à ceux qui voulaient la détruire, que ne l’étaient, en présence des Perses, les trois cents hommes de Léonidas. (Le Patriote) 번역: 제네바는 유럽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영웅적인 도시다. 거기서 일어날 역사를 미리 알려줬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제네바는 사보이 공작과 교황 뿐만 아니라 황제인 카를 5세에게도 항거했으며 그에 맞먹는 프랑수아 1세에게도 대항했다. 그들에게 맞서 먼저는 정치적인 자유를 그다음으로는 종교적인 자유를 쟁취했는데 이는 자신만이 아닌 북유럽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 여러차례 그곳은 개신교와 자유를 위한 ‘테르모필레’가 되었고 페르시아에 맞선 레오니다스의 300명 보다 많다 할 수 없는 적은 영웅적 무리에 의해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자들로부터 용감히 지켜졌다. ↩
마 11:28-30; 엡 5:8 ↩
마 9:12; 요 9:41; 롬 3:9-10; 요일 1:9-10 ↩
눅 24:46-47; 요 17:3; 행 4:12; 행 10:43; 고전 6:11; 딛 3:3-7 ↩
시 50:14-15; 시 116:12-13; 마 5:16; 롬 6:12-13; 엡 5:10; 딤후 2:15; 벧전 2:9,12 ↩
창 1:1; 요 5:39; 요 20:31; 롬 10:17; 딤후 3:15 ↩
신 10:12-13; 수 1:8; 시 119:105; 미 6:8; 롬 1:5; 딤후 3:16-17; 약 2:14 ↩
창 3:15 ↩
창 12:3; 22:18; 26:4; 28:14; 49:10 ↩
사 42:1-4; 43:25; 49:6; 52:13-53:12; 렘 23:5-6; 31:32-33; 미 7:18-20; 요 5:46; 행 3:22-24; 10:43; 롬 1:2; 히 1:1 ↩
레 1-7장; 골 2:17; 히 10:1,7 ↩
롬 10:4; 갈 3:24; 4:4-5; 골 2:17; 히 1:1-2 ↩
행 13:48; 엡 1:4-5; 살후 2:13-14; 딤후 1:9 ↩
창 3:15; 창 17:7; 출 19:5-6; 렘 31:31-34; 마 20:28; 롬 3:20-22; 고전 11:25; 갈 3:21-22; 히 9:15 ↩
롬 3:24 ↩
시 130:4; 롬 4:6-8; 고후 5:19 ↩
고후 5:21 ↩
창 15:6; 창 15:6; 롬 5:19 ↩
행 10:43; 갈 2:16; 빌 3:9 ↩
롬 3:21-26; 5:1-2; 갈 2:16; 엡 2:8-9; 빌 3:9 ↩
롬 3:9-12; 약 2:10-11 ↩
롬 7:23 ↩
신 9:6; 겔 36:22; 롬 3:24; 엡 2:8; 딛 3:5 ↩
롬 4:24-25; 고후 5:21; 요일 2:1-2 ↩
롬 4:4-8; 고후 5:19 ↩
요 3:18; 롬 3:22 ↩
눅 1:77; 골 1:14; 시 32:1-2; 롬 4:6-7 ↩
롬 3:23-24; 행 4:12 ↩
시 115:1; 고전 4:7; 롬 4:2 ↩
고전 4:7; 롬 4:2; 고전 1:29-31 ↩
롬 5:19 ↩
히 11:6-7; 엡 2:8; 고후 5:19; 딤전 2:6 ↩
롬 5:1; 엡 3:12; 요일 2:1 ↩
창 3:7 ↩
사 33:14; 신 27:26; 약 2:10 ↩
시 130:3; 마 18:23-26; 시 143:2; 눅 16:15 ↩
고전 1:30, 2:2 ↩
롬 10:10; 요일 5:10 ↩
롬 8:30, 3:24 ↩
롬 3:22, 3:24-25, 3:27-28, 4:5-8, 5:17-19; 고후 5:19, 5:21; 딛 3:5, 3:7; 엡 1:7; 렘 23:6; 고전 1:30-31 ↩
행 10:43, 13:38-39; 갈 2:16; 빌 3:9; 엡 2:7-8 ↩
롬 5:8-10, 5:19; 딤전 2:5-6; 히 10:10, 10:14; 단 9:24, 9:26; 사 53:4-6, 53:10-12 ↩
롬 3:24; 엡 1:7 ↩
롬 8:32 ↩
고후 5:21; 마 3:17; 엡 5:2 ↩
롬 3:26; 엡 2:7 ↩
롬 8:30; 고전 1:30; 고전 6:11; 엡 1:5 ↩
겔 36:27; 빌 2:13; 살후 2:13 ↩
고후 5:17; 엡 4:23-24; 살전 5:23 ↩
겔 36:25-27; 롬 6:4, 6, 12-14; 롬 8:4; 고후 7:1; 벧전 2:24 ↩
롬 14:8; 살전 5:9-10 ↩
고전 6:19-20 ↩
고전 3:23; 딛 2:14 ↩
벧전 1:18-19; 요일 1:7; 2:2,12 ↩
요 8:34-36; 히 2:14-15; 요일 3:8 ↩
마 10:29-30; 눅 21:18 ↩
요 6:39; 10:27-30; 살후 3:3; 벧전 1:5 ↩
롬 8:28 ↩
롬 8:16; 고후 1:22; 5:5; 엡 1:13-14 ↩
겔 36:26-27; 롬 8:14; 고후 3:6,18; 요일 3:3 ↩
신 27:26; 갈 3:10 ↩
사 64:6 ↩
롬 6:13; 12:1-2; 엡 2:10; 벧전 2:5,9 ↩
마 5:16; 고전 6:19-20; 벧전 2:12 ↩
마 7:17-18; 갈 5:6,22-23; 벧후 1:10 ↩
마 5:16; 롬 14:18-19; 벧전 3:1-2 ↩
요 1:12; 롬 3:28, 롬 5:1 ↩
약 2:17, 2:22, 2:26; 갈 5:6 ↩
롬 3:20, 4:2, 4:4, 4:6; 엡 2:8-9; 딛 3:5-7 ↩
롬 8:18; 시 16:2 ↩
욥 22:2-3, 35:7-8 ↩
눅 17:10 ↩
갈 5:22-23 ↩
사 64:6; 갈 5:17; 롬 7:15, 7:18; 시 143:2, 130:3 ↩
벧전 1:23; 롬 10:17; 요 5:24 ↩
살전 1:5; 롬 8:15; 요 6:29; 골 2:12; 빌 1:1, 1:29; 엡 2:8 ↩
행 15:9; 롬 6:4, 6:22; 딛 2:12; 요 8:36 ↩
딛 2:12 ↩
딛 3:8; 요 15:5; 히 11:6; 딤전 1:5 ↩
딤전 1:5; 갈 5:6; 딛 3:8 ↩
딤후 1:9; 롬 9:32; 딛 3:5 ↩
롬 4:4; 창 4:4 ↩
히 11:6; 롬 14:23; 창 4:4; 마 7:17 ↩
고전 4:7; 사 26:12; 갈 3:5; 살전 2:13 ↩
빌 2:13 ↩
눅 17:10 ↩
마 10:42, 25ㅣ34-35; 계 2:11, 3:12, 3:21; 롬 2:6; 요2 8; 롬 11:6 ↩
엡 2:9-10 ↩
사 64:6 ↩
사 28:16; 롬 10:11; 하 2:4 ↩
마 5:16; 롬 14:18-19; 벧전 3:1-2 ↩
시 71:17-18; 사 59:21; 고전 11:26 ↩
창 26:4; 사 49:6; 롬 10:12-13; 계 5:9 ↩
롬 8:29-30; 엡 1:3-5,10-14; 벧전 2:9 ↩
시 111:1; 행 20:28; 딤전 3:15; 히 12:22-23 ↩
요 17:21; 행 2:42; 고전 3:16; 엡 4:3-6,13 ↩
사 59:21; 롬 1:16; 10:14-17; 엡 5:26 ↩
시 129:4-5; 마 16:18; 요 10:16,28 ↩
고전 12:27; 벧전 2:5 ↩
시 23:6; 요 10:28; 롬 8:35-39; 고전 1:8-9; 벧전 1:5; 요일 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