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이 문서는 칼빈의 로마서 주석과 함께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인상 깊었던 내용 및 개인적으로 반추한 것들을 기록한 노트입니다.

(알림: 이 문서는 칼빈의 로마서 주석과 함께 한 로마서 공부의 짤막한 기록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완전성


1절: 태초의 타락 이래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얻게 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다. 그의 공로는 완벽하게 하나님께서 받으셨으므로 두려움 없이 화평을 누리자.

2절: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광을 우리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미래의 소망이 있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바쁠 수 밖에 없다.

4절: 인내는 연단—곧,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장성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헛것이 아니라 실질적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고 우리의 소망이 굳어지는 것이다. 그 소망은 곧 2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소망이다. (야고보서 1장 4절 참조)

5절: 그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고 우리 현세의 삶에서도 확인이 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시련이 올찌라도 우리의 소망이 더 굳건해지고 연단의 열매를 얻는다. 그러므로 악한 자가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환난 조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깨닫고 느끼도록 성신께서 일하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고 (2절 참조) 우리가 무얼 잘해서 얻어낸 사랑이 아니다.

And certain it is, that no other thing is taught by Paul than that the true fountain of all love is, when the faithful are convinced that they are loved by God, and that they are not slightly touched with this conviction, but have their souls thoroughly imbued with it. Calvin, Commentary on Romans

Calvin, Commentary on Romans

6-8절: 성신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은 특히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를 깨달음을 통해서였다.

9절: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이 끊이지 않을 것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에, 그의 살으심으로 더더욱 진노에서 벗어날 것이다.

[F]or it would not have been enough for salvation to have been once procured for us, were not Christ to render it safe and secure to the end. And this is what the Apostle now maintains; so that we ought not to fear, that Christ will cut off the current of his favor while we are in the middle of our course: for inasmuch as he has reconciled us to the Father, our condition is such, that he purposes more efficaciously to put forth and daily to increase his favor towards us. Calvin, Commentary on Romans

Calvin, Commentary on Romans

12절: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은 특별히 계명을 어겼다는 의미 보다는 부패하고 악한 심성을 지녔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상태 가운데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But to sin in this case, is to become corrupt and vicious; for the natural depravity which we bring, from our mother’s womb, though it brings not forth immediately its own fruits, is yet sin before God, and deserves his vengeance: and this is that sin which they call original. For as Adam at his creation had received for us as well as for himself the gifts of God’s favor, so by falling away from the Lord, he in himself corrupted, vitiated, depraved, and ruined our nature; for having been divested of God’s likeness, he could not have generated seed but what was like himself. Hence we have all sinned; for we are all imbued with natural corruption, and so are become sinful and wicked. Calvin, Commentary on Romans

Calvin, Commentary on Romans

12절 다음은 18절로 이어서 읽는 것이 유익하다. 13-17절은 잠시 부연 설명에 해당한다.


13절: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다”는 것은, 율법을 모른다고 정죄를 피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 없이는 자기가 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다시 말 해,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14절: 그러나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심지어 갓난 아기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있기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한다.

15절: “많은”은 “전부”와 같다. 아담 안의 많은, 그리고 전부는, 아담 안에서 죽었으나; 그리스도 안의 많은, 그리고 전부는, 다시 말해 신자들은, 살았다.

16절: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세례 받기 전의 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지을 ‘많은 범죄’까지도 덮는 은사이다. 죄에 대한 심판(공의)의 결과는 정죄이지만, 많은 죄에 대한 은사(은혜)의 결과는 의로움이다.

17절: 그리스도가 아담 보다 위대하다. 왜냐면 그리스도의 의가 아담의 죄를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담의 죄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모든 면에서 대응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아담 안에서의 죽음은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imputation)됨가 더불어 그 안에서 우리의 실질적 타락에 기인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서 얻을 뿐, 우리에게 있는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의는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사도는 이미 밝혔다. 또, 아담의 죄는 온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의 의는 신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얻는다. 그리고 신자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나면서부터 그리스도를 접하게 되지만, 불신자의 자녀들은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

19절: 그리스도의 순중은 우리에게 전가할 의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음을 배운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얻기 위한 순종은 완벽하고 완전한 순종이어야 함을 배운다. 그러므로 죄인이 자기의 부족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방식 대로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증스럽게 여기시는지 배운다.

20절: 범죄를 더하게 하기 위함이 율법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죄인으로 하여금 자기 죄의 심히 죄됨을 알게 하고 구원자가 필요함을 알게 하는 것은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이부분을 굳이 죄의 욕구를 일으킨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21절: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하였다”는 과거형을 씀으로써,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 죄가 더 이상 왕노릇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단순히 “의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노릇한다”고 할 수 있으나 거기에 “은혜”라는 말을 더함으로써 사도는 다시 한 번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 인정 받을 그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인한 것임을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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