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

  • bm,  복음 | Gospel

    왜곡되어 인용되는 인기 구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마태복음 7장 21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상당히 많은 경우 “믿음 못지 않게 행위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그 의미가 왜곡 되어 인용 된다. 하지만, 이 말씀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27절에 걸쳐 기록된 산상보훈의 결미를 여시는 말씀으로서, 그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믿음은 있었으나 행위가 없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실만한 그 무엇을 행했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열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마지막 심판의 그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의지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읽는 우리는 과연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할 이유로 무엇을 제시할 것인가? 우리도 이…

  • bm,  복음 | Gospel

    나의 죄는 예수님께, 예수님의 의는 나에게 (Double Imputation)

    아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6–19문답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해 중 일부이다: 부활이 예수님의 칭의(稱義)라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얻으신 의로움에 우리가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칭의는 우리의 칭의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내가 믿으니까 의롭다 함을 얻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존재나 다른 것을 믿지 않고 부활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신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그분 안에서 내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칭의’ 하면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여서 ‘믿음과 칭의’만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원이 되는 것은 부활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로써 의롭다 하심과 생명을 얻으셨고, 그 얻으신 것을 우리에게 돌려주시고…

    Comments Off on 나의 죄는 예수님께, 예수님의 의는 나에게 (Double Imputation)
  • bm,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성례전 | Sacraments,  언약신학 | Covenant Theology

    세례는 하나다 (유아세례와 성인세례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음)

    언약신학의 기본적인 내용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언약의 확실함을 알리시는 방도 중 하나로 눈에 보이는 예식들을 제정하셨다. 이러한 성례전(聖禮典)들은 언약공동체에게 주신 언약의 표(表, sign)가 된다. 그 표가 상징하는 것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인(印, seal)으로서도 작용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할례와 유월절 만찬이 언약공동체에게 주신 성례전이었다. 할례는 입문 (enterance) 예식이고, 유월절은 새롭게 (renewal) 하는 예식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할례와 유월절 만찬을 새롭게 하신 것이 세례와 성찬이다. 구약과 신약의 구분은 언약을 성취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후의 시기적 구분이지, 두 개의 다른 언약을 믿은 것이 아니다. 구약과 신약의 교회는 시공간을 넘어 동일한 언약을 믿는 하나의 언약공동체이다. 그러므로 할례, 유월절, 세례, 성찬 모두 동일한 언약의 성례전들이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성례전 시행에 있어 세부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어도 큰…

    Comments Off on 세례는 하나다 (유아세례와 성인세례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음)
  • bm,  성례전 | Sacraments,  언약신학 | Covenant Theology

    할례와 유월절 만찬, 세례와 성만찬의 연계

    창세기 3장을 보면 태초의 사람이 범죄한 직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운 구원의 약속을 하신다. 구약의 교회는 그 은혜의 언약을 이룰 자손을 믿음으로 기다리던 언약공동체였고, 신약의 교회는 그 자손 곧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다는 것을 믿는 언약공동체이다 — 즉, 신구약의 교회 모두 시공간을 넘어 동일한 언약을 믿음으로 지키는 하나의 공동체이지, 마치 옛 언약과 새 언약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 약속의 확실함을 눈에 보일 수 있는 형태로 되새길 수 있는 예전(禮典)들을 제정하셨는데,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그것이 할례와 유월절 만찬이었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그것들을 새롭게 하신 것이 세례와 성만찬이다. 이번 글에서는 언약신학의 이러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오늘 너희 곧 너희의 수령과, 너희의 지파와, 너희의 장로들과, 너희의 지도자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너희의…

  • bm,  복음 | Gospel

    복음의 주된 청중은 신자들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견고케 하시는데 사용하시는 것이 다름 아닌 복음이라고 말한다 (로마서 16:26). 실상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으로부터 끊임 없이 힘을 얻고 또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각성이 깊어지는 것은 신자들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복음으로서의 능력을 신자들 가운데서 나타낸다. 복음의 주된 청중은 신자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본성상 복음을 싫어하고 오해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늘 복음을 듣고 또 그 깊은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깨닫고 믿어야 하겠다.

    Comments Off on 복음의 주된 청중은 신자들이다
  • bm,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이 세상 | This World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 로마서 15:6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여기에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큰 이유가 나타나 있다; 기독교는 그 최종 목표를 막연하게 신적인 존재에 다가가거나, 깨달음을 얻거나, 혹은 만물을 신이라고 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분명한 대상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데에 두기 때문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경배하기 싫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기록된 문서를 보면 수 천 년 전 이집트의 파라오도 자기 수하에 있던 히브리 종들을 놓아줄 것을 이스라엘의 신(神)께서 명하신다는 모세의 말을 전해 듣고도 무릎 꿇기를 거절하였다. 파라오와 그 신하들은 야훼께서 행하시는 기사를 보고 거기서 신적인 권능을 보았지만 히브리 종들의 신(神)이 자기 머리 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