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 Church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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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언약도들

    개혁 장로 신학교 논문집의 최근호에 “한국 언약도”에 관한 논문이 실렸습니다: Yang, Namsik, Korean Covenenters: J.G. Vos, Bruce Hunt and a Presbyterian covenant in Manchuria, Reformed Presbyterian Theological Journal, Vol 4, 2, Spring 2018 제목을 국어로 번역하자면 “한국 언약도들: J.G. 보스, 한부선, 그리고 만주에서의 ‘장로교인 언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하 <한국 언약도들>이라 약칭). 개혁장로신학교(Reformed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는 북미개혁장로교회(Reform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의 신학교입니다. RPCNA로 약칭되는 북미개혁장로교회는 장로교회에 대한 탄압 속에서 ‘스코틀랜드 언약도'(Scottish Covenanters)들이 미국으로 피난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생긴 교단입니다. RPCNA는 본 블로그의 저자가 10년이 넘게 함께 했던 교단이어서 친숙합니다. 그때 알게 된 한인 성도들 중에 하나가 지금 소개하는 논문을 쓴 양남식 목사입니다. <한국 언약도들> 요약 <한국 언약도들> 논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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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에서 배우는 교훈 (김홍전 박사)

    김홍전 박사의 사도행전 강해 제 6권 제 1강에서는 바울의 1차 여행에서 얻는 교훈을 정리하고 있다: 첫째, '어떤 방법으로 선교를 해 나갔는가?' 둘째, '어떠한 능력이 그들의 뒤를 따랐는가?' 셋째, '그 사람들의 경험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넷째, '그들을 협박하고 위협했던 큰 위험이 무엇인가?' 일단은 유대교의 열혈분자들의 위협과 협박이 있었지만, 가장 큰 위험과 위협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김홍전 박사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지적하고 있다. 끝으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태도 가운데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 내용이 매우 귀해서 여기에 다 옮겨 적어서 나누고 싶지만 그러면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요약을 하고 일부분만 인용을 한다. 정통과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전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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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문호 목사: “사도신경은 사도적이지도 성경적이지도 않다”

    “사도신경은 사도적이지도 성경적이지도 않다”는 기고문을 약 한 달 전에 강문호 목사가 썼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은 논쟁으로 인해 접속이 차단된듯 하다. 그래도 인터넷에 한 번 올라온 글은 없애기가 참 어렵다.) 이것은 신학과 교회사에 대한 강문호 목사의 이해에 결핍이 있음을 보여준다. 강문호 목사가 금년 종교개혁주일을 기하여 예배시간에 사도신경 고백을 제외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될 것은 없고), 정작 개혁자들은 사도신경이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가톨릭 교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종교개혁 시대에 작성된 걸출한 신앙고백서 가운데 하나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는 왜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하는지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강문호 목사께서 읽어보셨을까?) 바 칼빈이 제네바에서 폭정을 행했다는 허무맹랑한 헛소문에 관한 것도 그렇고, 사도신경이 로마 가톨릭적인 신앙으로 이끈다는 강문호 목사의 주장도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은 교회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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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폭정(?)

    만나교회의 김병삼 목사가 말하길: “칼빈은 종교국을 통해서 신정정치를 구현했다. 그의 신정정치는 엄격했고 가혹했다. 처음 5년 동안 13명이 교수대에서 죽었고, 10명이 목이 잘렸고, 35명이 화형당했고, 76명이 추방당했다. 오죽하면 감방마다 죄수로 가득차서 간수장이 시당국에 단 한 명의 죄수도 더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할 정도였다.” 헛소문을 사실인지 확인도 안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칼빈(칼뱅)이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구현하고 폭정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돌아다니기는 하나,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저질 정보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출처를 제시하라고 하면 열이면 열 세바스챤 카스텔리오 혹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을 지목한다. 카스텔리오의 글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면서 쓴 글로서 자기 선전물로서는 기교가 넘치는 글이지만 역사적 사건들을 신빙성 있게 기록한 사료로서는 가치가 떨어지는 글이다. 츠바이크는 소설가이자 가톨릭 신자로서, 그의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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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에서 눈으로 보고 배우는 로마 가톨릭(천주교)의 정수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황이 “주교들의 일치는 물론 신자 대중이 이루는 일치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라고 믿을 것으로 요구한다. 다시 말해 하나된 보편 교회가 갖고 있는 연합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으로서 교황이 있다고 믿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황을 수장으로한 교도권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구성된다. 교황청이 위치한 바티칸을 방문해보면 그 사실이 매우 뚜렷하고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이 과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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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르트 신조 395주년

    예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마 16:19) 하셨을 때 (그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할 것 없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교회에 권위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교회로 하여금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이다’라고 공적(公的)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권위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도르트 신조(Canons of Dort)는 그러한 역사적인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로 특히 개혁된 교회들 가운데서 존중 된다. 도르트 신조의 내용은 종종 ‘칼빈주의 5대 강령'(Five Points of Calvinism)이라는 말로 소개 되곤 하는데, 사실 이것은 부적절하고 부실한 표현이다. 이제 잠시 보겠지만, 도르트 신조는 네덜란드 개신교회에서 있었던 다섯 가지 신앙적 쟁점을 다룬 도르트 총회(Synod of Dort)의 결론이다. 도르트 총회가 열리게 된 계기는 네덜란드의 아르미니우스(Arminius) 학파 세력이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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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Piper’s Introduction to John Gresham Machen

    A fascinating lecture by John Piper, introducing John Gresham Machen. Very informative. Talks about modernism, fundamentalism, Princeton seminary, Machen’s experience in Germany, his encounter with liberalism/modernism, the sprit of modern age, and more. Highly recommended. Your time will not be wasted. http://www.desiringgod.org/resource-library/biographies/j-gresham-machens-response-to-moder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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