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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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계명: 하나님의 성호를 부름

    요새 교회에서는 십계명이 강해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라는 계명들이 있지만 무엇을 “하지 말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또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컨대 제 3 계명은 하나님의 성호를 헛되이 부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돌려 말해 하나님의 성호를 정당하게 부르라는 큰 특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욕심을 위해, 또는 다른 헛된 이유로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그런 것을 방지하고자 하나님의 성호를 입에 담지 않으려 하다가 결국 성호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발음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고 “야훼”가 가장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확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성호를 함부로 부른 사람이 자기 죄를 자각했을 경우 그 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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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사회 선도 혹은 개혁 단체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삭막한 현대 사회 속에서도 공중 도덕과 법을 잘 지키고 이웃을 돌아보며 나눔을 실천하고 근실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인/비기독교인 할 것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만 할 일입니다. 그런 것을 가르치기 위해 종교를 들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도덕적 삶을 가르치는 것을 공교육에서 발견합니다. 건전한 사회인을 길러내기 위해 종교 단체를 조직할 필요는 없습니다. 종교와 상관 없이 사회 봉사 단체 또는 사회 정의 실현 단체 등을 조직할 수 있고 또 그런 조직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존재 의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단체든 그 단체가 성립 될 때는 고유의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빈민 구제 단체가 부족하거나 사회 정의를 위한 시민 단체 또는 자선 사업체가 부족해서 교회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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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학 | Theology

    성경은 개인의 가치를 최고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요한복음 10장 3절을 보면 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양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양 하나 하나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아신 예수께서는 개인을 군중의 부품 같이 취급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각 사람의 개성과 필요를 다 아시고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나 하나와 예수님을 비교하자면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온 인류와 예수님을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과도 예수님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분 앞에서는 나는 찌끼 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개인의 가치를 전체 속에 파묻어서는 안 되지만, 그 가치가 가장 높은 가치는 아닙니다. 나 한 사람 보다 예수님이 더 중요하고 내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예수님의 몸이 지체인 나 보다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할 때에도 아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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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학 | Theology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1세기 동안 발전되었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에서 시작되었고, 그 대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지요1; 즉 우리 각 사람의 죄에 대한 형벌을 맛보시고 죽으셨으나 그 의로움으로 부활하사 천상천하의 대권을 쥐고 지금 이 땅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고백, 또는 기독관(그리스도란 어떤 분인가?)은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 중엔 이러한 성경의 기독관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약 몇 십년 동안 서서히 발전되어 정립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약 50일이 지난 시점에서 베드로가 한 설교(사도행전 2장)를 읽어보면 아주 처음 부터 그 사상 가운데 예수님의 속죄와 메시아적 왕권이 우뚝 서있습니다. 게다가 신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보더라도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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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교회에 대한 이해가 빈곤함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회학자들의 경우 교회의 등장을 어떤 사회적인 활동의 결과물처럼 이해하려고 시도하겠지만, 우리에게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설립하셔서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형태로 존재하여 왔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새로운 형태, 더 발전된 형태의 교회가 (소위 신약의 교회라고 부르는데) ‘오순절 성령 강림’이라는 사건과 더불어 수립되었습니다. 특히 그 역사의 순간이 성경의 사도행전 2장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과연 교회를 단순한 사회적인 단체, 공동체, 친목회, 신우회와 구별시키는 독특한 성격이 무엇이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배, 선교, 사회 봉사, 친목, 교육 등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그러한 일들은 꼭 교회라는 특수한 이름을 안 붙인 단체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때로는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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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빈곤함

    기독교의 진수는 죽어서 천당가는 데에 있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내세에 국한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성경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과연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해 보면 대답이 모호하다는 것이 우리의 빈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공동체다 등 여려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가 또 하나의 문제입니다. 그 의식이 빈약하다면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각성이 빈약하다는 뜻일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란 단어가 죽어서 가는 곳이란 한정된 의미로 대개 사용 되는 것이 아닐까요?) 성경의 기록을 보면 (특히 누가복은 24장과 이어지는 사도행전 1장)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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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학 | Theology

    예수님의 부활이 믿기 어려운 (또는 쉬운) 이유

    때는 예수님이 공적(公的)인 생활을 시작하신지 제 3년 가을, 이스라엘의 큰 명절인 초막절이 다가오던 때, 성경에 의하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죽은 세례 요한 또는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거나 선지자라 합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자들이 빠트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중 중 더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초막절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7:31): “그리스도 곧 메시야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그런데도 제자들이 이러한 현상을 예수님께 아뢰지 않은 것을 보면 거기에 큰 무게를 두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뒤에 나오는 베드로의 대답과 군중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모습엔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