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Prayer
일용할 양식과 생명의 문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5 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5 문답은 주기도문에 나타난 바 일용할 양식으로 표현된 생명의 문제에 관한 문답이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이다.) 125문: 넷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우리의 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려 주시며, 그리하여 오직 주님이 모든 좋은 것의 근원임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복 주심이 없이는 우리의 염려나 노력, 심지어 주님의 선물들조차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함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게 하옵소서.” 아래는 이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4, 201–202 쪽).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간구는 사람의 생명이 일용할 양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기도이고, 또한 우리가 일용할 양식도 구하여서 얻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3 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0–121 문답은 주기도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문답이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이다.) 123문: 둘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나라이 임하옵소서”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성신으로 우리를 통치하시사 우리가 점점 더 주님께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교회를 보존하시고 흥왕케 하옵시며, 마귀의 일들과 주님께 대항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세력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 반대하는 모든 악한 의논들을 멸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져 주께서 만유의 주가 되실 때까지 그리하옵소서.” 아래는 이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4, 136–137 쪽). 굵은 글씨 강조는 졸인이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신으로 통치하시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부하게 선포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서 잘 실현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물과 성신으로…
주기도문 서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0–121 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0–121 문답은 주기도문 서두에 관한 문답이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이다.) 120문: 그리스도께서는 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라 명하셨습니까? 답: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의 첫머리에서부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셨는데,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가 되셨으며,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가 땅의 좋은 것들을 거절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21문: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답: 하나님의 천상(天上)의 위엄을 땅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래는 이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4, 76–78 쪽). 굵은 글씨 강조는 졸인이 한 것이다. 첫째,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중보기도’는 부적절, ‘도고’라 해야
‘중보기도’라는 말이 한국 교회에서 많이 쓰이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는 (디모데전서 2:5) 진리를 놓고 생각한다면 부적절한 표현이다. 사람들 입에 익지 않았겠지만 ‘도고(禱告)’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개역성경에서 디모데전서 2:1을 번역할 때 사용한 말.) 로마서 15:30을 보면 바울 사도가 로마의 성도들에게 도고를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더 도고의 유익을 기대해야 하겠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도고를 요청한 것을 읽고 우리도 천당에 가 있는 바울에게 도고를 요청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Whitby는 ‘바울이 편지를 통해 도고를 요청한 것을 잊지 말라. 그러니 바울을 본받아 그에게 도고를 요청하고 싶다면 바울한테 편지를 쓰라’고 대답한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말씀을 아뢰는 방도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 외에…
금식은 기도를 돕기 위한 것
금식에 대해서 칼빈이 쓴 것(기독교강요, 제 4권, 12장, 14-21절)은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은혜의 방도로 말씀, 예배, 찬송, 기도, 헌상, 성찬과 세례를 들 수 있지만, 금식은 그 자체로 은혜의 방도로 보지 아니합니다.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금식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금식 자체가 무엇을 이루지 못합니다. 물론 그것은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무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권능의 손에 의지하는 것이고, 나를 부인하는 하는 것이잖습니까. 우리의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께 인정 받을 근거가 되지 못하며, 우리의 의란 다 더럽습니다.
방언에 대한 개혁신앙적 입장
그런가하면 성경 시대의 방언은 계시적 도구였지만 오늘날의 방언은 계시적 도구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늘 날에도 방언 현상이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둘째 입장을 가지게 되면 성경에 나타난 방언과 오늘날 있는 방언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이런 입장을 취할 때, 오늘날의 방언 현상과 성경적 방언을 같은 것으로 보고 하는 논의를 하거나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 “방언 문제에 대한 성경적 개혁 신학적 논의를 감사드리면서” 이승구 교수
죄의 추악함
사람 속에 있는 죄의 추악함을 느낀다. 가르침과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죄성이 분출될 기회와 가능성이 적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죄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성인 군자일수록 자신을 반성하고 매일 참회록을 쓴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세상에 퍼져있는 참혹하고 수치스러운 죄악들을 볼 때 그러한 죄악의 근원이 내 마음 속에도 있다는 것과, 또 때를 따라서 그것이 정도만 약할 뿐 미약하게 발산되는 것을 확인한다. 그럴 때 인류의 커다란 죄악 가운데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무고한 살인과 학살이라는 극악한 죄악도 결국 미움과 탐욕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열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내 안에 있는 작은 미움 작은 탐심이 얼마나 더럽고 썩은 것인지 느끼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 눈 앞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조금이나마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