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Prayer
사람의 부패한 정도
juwana 님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다가 다음 구절을 보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가 아무 일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평안하기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 아닌가 하는 뜻이다. 이 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닐찌라도, 혹 우리가 기도할 때의 무의식적인 심정이 ‘하나님을 좀 찾지 않아도 되는 무사안일함을 주십시오’하는 때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무서운일이다. 이처럼 인간은 거룩한 것을 가지고서도 패악한 일을 저지를 정도로 부패하였다.
기도는 은혜의 방편
양태진 님의 블로그에 가면 VeldeKamp의 “Dreams and Dictators”를 읽어 가며 쓰신 다니엘서 6장에 대한 묵상이 있다. 거기서 나누고 있듯이 다니엘은 한 달간 기도를 금하는 령을 접했을 때 그는 “감사하며” 늘 하던대로 여전히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 기도를 하였다. 그에게는 ‘기도하는 자는 죽인다’는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이 더 두려웠으며 사실 기도를 그만 둔다는 것이 이미 죽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증인인가! 사실 다니엘을 공격하기 위해 적들은 한 달 동안 기도를 금지할 필요도 없었다; 하루면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기도 없이 지내기가 하루가 뭔말인가. 하나님의 나라에는 법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말씀, 예배, 찬송, 기도, 성례전, 헌상이라는 여섯 가지 통로를 마련하셨다. 그것을 무시하고서라도 그 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밥을 먹고 살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 개인의 어려운 사정과 슬픈 사정을 그냥 고(告)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에 관여를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명확하게 붙이지 않은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들으실 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기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간 사람은 아담 이래로 하나도 받으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를 통해서 항상 무자격을 자격 있게 인정하신다는 속죄, 곧 하나님의 칭의의 사실이 늘 붙어다녔습니다. 그 사람을 보지 않으시고 그가 드린 제물이 그를 대신해서 죽고 피를 흘렸다는 사실의 터 위에서만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제사를 드려 달라고 제물을 줄 때도 반드시 드리는 사람이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해서 “이것이 나입니다” 하는 자기를 대신 표징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 양이 자기를 대신해서 죽으신다는 것은 본래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