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Gospel
추기경의 타계 소식을 접하며
김수환 추기경의 타계 소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분 생전의 선행들이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회는 그 분이 얼마나 사회의 복지에 기여를 했는지 주로 이야기하며 칭송을 합니다. 그러면서 진리를 믿노라는 사람이, 특히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기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문제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마가복음 8:36) 사람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 적절한 의식주의 환경입니다. 그러나 굳이 우선 순위를 따지자면 생명이 우선입니다. 병든 사람은 살려 놓고 의식주를 이야기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이웃에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여 중 최고의 것은 생명을 전하는 일입니다. 참된 생명을 전하지 않거나, 진리를 흐리는…
같은 죄를 계속 지어도 구원 받았나요?
회개를 주제로 하여 개혁주의의 핵심—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30여 분 짜리 녹음이 있습니다. 거기서 다루는 내용 중 몇 가지만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와 성화는 다른 것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회개는 “change of mind”이고, 성화는 “change of life”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죄의 심히 죄된 것을 아는 것이고 슬퍼하는 것이고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회개와 성화가 비슷한 부분도 있다; 둘 다 믿음의 열매이고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결과로 생긴 것이다; 둘 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다; 참된 회개와 성화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발생하는 것이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다.
타인의 희생으로 우리가 자유를 누림
한국 전쟁 뿐만 아니라 2차 세계 대전 당시 수 많은 젊은이들이 그 전쟁터에 나가 적을 물리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생각하여 목숨을 바쳤다. 그 희생 위에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있다. 그들이 꿈을 포기했기에 우리는 꿈을 꿀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지금 당장 전 인류를 지옥불에 넣어 멸망시켜야할 이유와 근거가 하나님께는 너무도 많다. 그러나 그 분의 한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참으신다. 참으신 것 뿐만 아니라 독생하신 하나님 곧 예수님은 나를 그 분 일부로 삼으사 내 죄의 형벌 까지 받아주셨다. 그 분이 맞으심으로 내가 오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있다. 그러니 일 분 일 초를 나를 위해 살 수 없는 일이니, 그리스도의 것으로 늘 살게 해…
그리스도의 탁월함
우리의 고백도, 회개도, 의지도, 모든 것이 불완전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받아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이웃집 영감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십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복음을 믿을 것을 요구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위의 말씀에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속죄의 법과,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그 속죄 제물을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다는 복음을 봅니다. 사람이 무엇을 준비해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을 사람이 믿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만족시키면 영생을 주신다는 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이지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기” 때문에 (이사야 64:6)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갈라디아서 2:6)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또 죄를 지를 것을 아시고 용서하심
어제 주일 예배 말씀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조건 없는 사랑, 저에겐 그것이 정말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노라면 너무도 결점과 죄악 투성이라서, 아무래도 하나님의 본심은 “참 꼴도 보기 싫지만 ‘언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 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저를 반기시리라 느껴집니다. 아마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예수님 앞에 끌려온 그녀는 그 심정을 알 것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그녀를 비난하는 군중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녀 앞에 계십니다. 제가 그녀였다면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아… 이제 올 것이 왔다…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죄를 짓는 현장에서 걸려 주님과 맞닥뜨렸다… 무어라 하실까… ‘너는…
복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란 사실과 제한속죄는 모순인가
이 글에서는 ‘제한속죄’와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이라는 명제가 왜 모순이 아닌지 추적하려고 한다. (1) 제한속죄의 의미를 돌아봄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14-15,27-29) 그리스도께서는 성부(聖父)께서 그에게 주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고, 그 양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위하신 양들은 하나도 잃어버림이 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이것이 개혁자들이 제한구속(limited redemption)이라는 제목으로 이름 붙인 내용의 핵심이다.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