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외로움, 섹스, 그리고 사랑
몇 해 전, 유명한 찬양사역자 한 분의 스캔들로 인해 그의 부인이 매우 화가 나 그의 섹스 중독적인 행동을 공적으로 언급하였던 일이 있었지요.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은 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할 수 없었던 이유 중 몇 가지만 들자면, 그는 죄를 이길 힘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과 복음이 가르치는 성화의 도리를 바르게 배운 일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또 정도만 다를 뿐 나 역시 마음으로 수 없이 간음을 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찬 섹스 중독자들에 대한 책을 근래에 읽고 그의 상태에 대해 훨씬 더 동정심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섹스 중독자들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뼈 속 깊이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꾸준한 교회…
부르심 (Calling)
피조된 것 중에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소중한 것은 교회이다. 이 세상에서 진행되는 일 중에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고 소중하며 희망적인 것은 참 교회가 뚜렷이 서 나가는 것이다. 그 분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준엄한 부르심을 느낀다. 부르신 보람을 만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능력있는 신앙
(사사기 소고 1, 제 3-5강 을 읽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내용을 체득, 체현 하여야 하겠다” 유명무실한 신앙을 반성함 우리는 “은혜 받았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 진정한 의미를 살려서 쓰고 있는가? 예를 들어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우로지택(雨露之澤)도 은혜다. 그러나 은혜 중엔 하나님의 백성들만 특별히 누리는 은혜, 구속의 은혜가 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성경을 읽으면 받을 수 있는 감동과 지식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은 일반 은혜이다. 이러한 말씀의 영향을 가지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은 아니다. 성경을 성신께서 들어 쓰시사 사람이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활동하게 하시고 장성케 하시는 역사가 있을 때 비로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작용한 것이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에게 성경을 주실 때 의도하신 특별한 은혜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복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란 사실과 제한속죄는 모순인가
이 글에서는 ‘제한속죄’와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이라는 명제가 왜 모순이 아닌지 추적하려고 한다. (1) 제한속죄의 의미를 돌아봄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14-15,27-29) 그리스도께서는 성부(聖父)께서 그에게 주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고, 그 양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위하신 양들은 하나도 잃어버림이 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이것이 개혁자들이 제한구속(limited redemption)이라는 제목으로 이름 붙인 내용의 핵심이다. 다시…
기독교는 나약한 자를 위한 종교인가
종교를 갖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엔 그 이유로서 종교는 나약한 사람이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기 위해 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는 것은,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은 절대의 대권으로 통치하시는 대주재시라는 사실이다; 그 분은 내가 어떻게 감히 어르거나 달랠 수 없는 분이시며, 그런 것을 보시는 분도 아니시다; 영원전부터 선하신 뜻을 따라 작정하신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이루어 나가시는 절대의 통치권자이시다; 그 분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왜”라고 물을 자 누구랴; 무슨 공포 영화에 나오듯이 귀신들이 하나님께 거역하지 못한다; 천지만물 모든 피조물이 그 분의 통치 앞에 복종할 뿐이다. 더 두려운 것은 절대의 공의로 다스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 각 사람의 무한한 죄 값이…
이방인과 세리를 대하듯 하라는 의미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그만큼 큰 능력으로 섬기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셨건만, 내 뜻대로 상대를 좌지우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저의 삐뚤어진 눈과 마음에서 연유합니다. 나 자신의 잘못과 범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간과하시고 그 대가를 내게 다 씌우지 않으시길 바라면서도, 타인의 잘못과 죄를 보면 그 대가를 그 사람이 반드시 받길 비는 나의 마음은 어찌나 가증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는 형제를 보거든 이방인과 세리를 대하듯 하라 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라는 뜻이요, 그렇기 때문에 주의 성찬을 함께 나누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을 배척하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과 세리를 대하신 그대로, 곧 그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여전히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저의…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하게, 자유스럽게, 자연스럽게 장성하는 자태
가족들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였다. IRC가 고백하는 사명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터라, 비록 내가 회원으로 몸 담고 있지 않지마는 이 교회의 행보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참가하였다. 교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나도 묻고 하면서 “신령하게, 자유스럽게, 자연스럽게”라는 말의 뜻을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는 말씀과 관련이 있으리라. ‘자연스럽다’, 또는 ‘무위'(無爲)라는 것과 ‘저절로’의 차이를 그동안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이란 말씀의 진의를 더 잘 알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각성은, 죄의 종된 것에서 자유하려면 그리스도께 대하여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자기 전부를 드린 바 되었다는 것이 언제나 기저적으로 명확해야 한다. 거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