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는 사람이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은 두 마음을 품지 아니 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그의 전부를 그리스도께 드리고 조금이라도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물론 이것은 나를 십자가에 함께 못 박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혀주시는 성령님의 끊임 없는 역사로만 가능하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가 없기 때문에, 주의 분명한 지시하심과 인도하심 외에는 도무지 무엇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여기에 믿음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을 찾는 자에게 그분의 오른손을 펼치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랬을 때, 그분은 분명히 인도하신다. 복권 당첨 식으로 이런 저런 확률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막힘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길을 막으시고 생각을 고쳐주시면서 까지 가야만 하는 길. 그 한 방향과 다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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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형제를 비난하지 말라

    내 바깥에서 무언가 잘못된 것을 보았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내 속에 그런 잘못된 것이 없는지 살필 일이다. 함께 그리스도의 지체된 성도들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 것이 옳다; 왜냐면 우리 중에 하나님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 짐이지만, 주께서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며, 크신 섭리 가운데 그 분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흠 많은 우리기에 다른 사람의 흠을 뭐라할 것이 아니라, 그저 “예” 할 것에 대해서는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에 대해서 “아니오” 하는 것에서 그쳐야 한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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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불안과 평안의 갈림길

    경외해야 할 분을 경외하고 전부를 드려야 할 분에게 전부를 드리는 자에겐 도무지 부족한 것이 없다. 이는 그의 목자가 선한 목자이기 때문이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를 버리지 못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며, 세상의 명예를 사랑하는 자에겐 평안이 깃들 수가 없다. 이는 그가 헛된 것, 곧 기식 없는 우상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아버님,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화목 제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시며 주무시기 때문에 돌아보지 못하시는 것이겠습니까? 만군의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 우리가 이기지 못하시는 것이겠습니까? 그분의 집엔 부족한 것이 없거늘, 다 우리가 각자의 욕심을 좇아 아버지 집안 일을 돌아보지 않고 집 밖 세상 일을 좇아 살아가기 때문에 실패와 불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룩하신 아버님, 아버님을 경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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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반성

    “내”[我]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는 없는 것이다. 10년 기독 신자 생활 해 봤자 소용없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옛 사람이며 그리스도 안의 유아다. 문제는 믿음이다. 그리스도를 확고히 믿는 것, 그를 전 인격으로 믿는 것, 그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주께서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나날이 확고해지고 커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상천하지 모든 것이 하나님을 힘 입어 기동하고 있다. 그러니 죄 짓는 자의 죄 값이란 엄중한 것이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것이 자행자지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삶은 짧다. 그 짧은 생을 주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은 지극히 크신 은혜다. 그러나 내 의지로는 안 된다. 도무지 안…

  • 구원 | Salvation,  신학 | Theology

    예정과 선교

    어제 교회에서 어떤 선교사님의 고백을 들었는데, 처음 선교를 떠날 땐 “예정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선교를 하겠는가”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선교의 어려움을 체험한 후 이제는 “예정이 없다면 어떻게 선교를 하겠는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더 열심을 내야 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이유는 주께서 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요, 그들에게 나아갈 것을 주께서 명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열심을 내느냐에 따라 상대가 구원받을지 안 받을지 영향받는다면, 그것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무수한 반대와 핍박을 받고도 기뻐하였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으리라. 하나님의 나라가 참으로 임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으리라. 믿고 의지할 분은 상천하지에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 구원 | Salvation,  복음 | Gospel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몇 주 전부터 교회에서는 예수님과 교회의 신비로운 연합을 주제로 말씀이 증거되고 있다. 어제는 요한일서 4장을 읽었다. 지금까지 그 본문은 항상 사랑을 강조하는 율문처럼 느껴졌었는데, 성령님께서 새롭게 마음을 밝혀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16절)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물론 여기에 강조는 “사랑”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전체에 있다 —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9절)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다는 것임을 어째서 지금까지 몰랐던가. 물론 머리로는 예수님의 희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대변한다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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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생활론에 있어서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이

    예전에 에 대해 얘기할 때 잠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기독교의 생활론을 결국에는 사랑하며 살으라는 것으로 이해할 때 다른 종교와 생활론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고, 결국 누구를 믿느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살아가는 모습과 방향에서는 종교 간에 차이가 없다는 다원주의적 착상이 들어서게 된다 [1]. 그러나 기독교의 생활론은 “내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증시가 불가능 하다”는 큰 사실 아래 “오직 성령님께서 만이 이루신다”는 큰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효”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지향하는 것은 나 개인의 인격 도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완성”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의 생활론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반석이 된다. 이것을 떠나서 무슨 생활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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