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열정은 피해만 드릴 뿐
마라톤맨 님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다가 다음의 칼빈 인용을 보았다: “실로 교만과 결탁되어 있는 허영은, 비참한 인간이 마땅히 자기 수준 이상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육적인 어리석음을 표준으로 삼아 하나님을 판단하고 건전한 탐구를 게을리하며 호기심에 따라 공허한 사색의 길을 달리고 있는 사실에서 찾게 된다. … 그후에는 아무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봉사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에서 만들어 낸 허구와 망상에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날의 나를 돌아보면 얼마나, 얼마나 어리석고 형편없고 암매하며 저속한 나의 생각 아래 하나님 앞에 열심을 품고, 또한 그러한 나의 열심을 비록 불완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어여삐 받아주시리라고 생각했던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아무 쓸모 없는 나
존 오웬 목사님의 고백이 구구절절이 나의 얘기다. 나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전혀 쓸모 없는 것이다. 심지어 나의 회개라고 하는 것도, 나의 다짐이라는 것도, 전부 소용 없고 오히려 그러했기 때문에 훗날 나의 배신의 죄를 더하는 것이다. 너무도 비참한 상태 가운데 있다. 도무지 해답이 없다, 그리스도 외에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지혜와 진리와 은혜의 충만을 본다. 예수님의 자비와 은혜 만을 바라보나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세상에 내신 보람을 만들어 주시옵소서.
나는 죽어야 한다
나는 완벽히 죽어야만 한다. 내게서는 도무지 희망이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오직 나는 썩었으며 더 썩어질 것 그것임을 본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는가!”하고 다짐 해보지만 나는 그것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하루라도 더 살고 있다면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에는 피해를 끼치는 것이고 오직 그 나라에 피해를 안 끼치는 유일한 길은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그것이다. 하나님을 찾지 않던 이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찾으시고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그것인 이 죄인을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 영원한 생명을 심어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나마 이 죄인을 살려두실 유일한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새 생명을 내게서 드러나게 해 주시는 일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그와 함께 살아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이 복음의…
가능성과 하나님의 인도
시간 속에서 어떠한 일을 이룰 가능성이 보이는 것,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앞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의 방법이 분명하지만, 보이는 가능성이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이끄시는 길은 아니다. 그리고 때론 나는 가능성을 보고 전진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것을 막지 아니하시고 결국 벽에 부딪히게 하심으로써 중요한 교훈과 함께 그것이 길이 아님을 가르치시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주께서 어떤 길로도 인도하시는지 알 수 없을 때 보이는 하나의 가능성을 향해 주를 사랑하는 심정에서, 그리고 주를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분변치 못하고 앞에 보이는 가능성을 무작정 좇아 가기가 쉽고 때론 거기에 교묘한 이유를 붙여 정당화 하기도 한다. 특히 젊으면 젊을수록, 자기가 선택하고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참으로 주를…
하나님을 두려워 함
구약과 신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이 다르다고 —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은 엄격하신 분이시나 신약에서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고 — 생각하기가 쉬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베드로 앞에서 거짓을 말하였다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행 5장), 주님의 성찬을 분별없이 대하였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이 있었다 (고전 11장). 일일이 이런 것들을 나열하는 것이 필요할까; 구/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엄위로우사 한 호리도 남김 없이 토죄하시며, 또한 한 없는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하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라고 해서 우리는 얼마나 그 분을 업수이 여기는가? 사람 사이에도 존숭히 여김을 받아야 할 분에게 합당한 공경과 예를 다 하지 않는 것은 죄이거늘, 하물며 도무지 감히 상상할 수 없이 높으신 그 분께 대한 우리의 죄는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와 도리들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기 싫어함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 눅 16:27-31 성경을 믿지 아니한다면, 과학적으로 온 인류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이것은 실제로 밝혀졌다), 노아의 방주를 찾아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보여 주어도, 설령 죽었던 모세가 다시 살아서 온다 하여도 믿지 아니할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인이 사회에 큰 봉사를 하고 공헌을 하고 덕을 끼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덕은 결코 개인의 완성을 추구하지 않음
여기서 우리가 중요히 생각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에게 선하라든지 의로우라든지 진실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요컨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각고면려하고 노력해서 의나 선이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종교가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종교도 정통이나 복음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고 아름답고 진실하라 할 때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경계냐 하면 성경은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스스로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본질적인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이것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저것밖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롬 7:19 참조) 그런고로 아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