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복음을 배반함
나우웬12 님의 블로그에 가면 존 오웬의 책 “왜 그들은 복음을 배반하는가”에 대한 요약이 있다. 죄의 종인 우리에겐 하나님의 진노 밖에 남은 것이 없으나, 그런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원하사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시고, 이제는 자유의 아들로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게 하신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 가운데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복음을 믿노라 하면서도 여전히 사욕에 사로잡혀 거기서 저회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 가당한 일이겠는가. 그것은 복음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아마 그런 사람 모두가 복음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복음의 그 풍성한 내용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일지라도 그것은 무서운 상태이다. 주님, 주를 믿노라 하면서도 실상은 구원을 얻게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부인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후안무치한…
주의 은혜로 주의 말씀을 지킴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시편 119:11 무엇이 의의 길인지 알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기도 하지만, 이제 내가 느끼는 것은 주의 말씀으로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대적이 나를 취하려 할 때 나는 주의 말씀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주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주의 은혜가 필요하다.
악한 교만
내게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것 — 참으로 큰 교만이 아닐 수 없고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행여나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이러한데 다른 사람 중엔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속하여 있는 사람과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세상이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은 애통이다. 세상의 전체적인 조직은 바로 그것을 피하기 위한 어떤 것이라는 전제 하에 되어진 것이다. 인생의 전체적인 조직, 쾌락에 도취되어 있는 것, 오락을 즐기는 사람 안에서 확장되어 가고 있는 열심과 에너지, 돈은 세상이 애통하고 비통해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큰 목적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말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실로 행복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 뿐이다! 이는 세상에서는 결단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는 신약의 교회들과는 달리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사람들로 보이려면 의도적으로 우리는 밝고 즐거움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사상이 인기를 얻어왔다.…
구원의 하나님 만을 기다림
The king is not saved by his great army; a warrior is not delivered by his great strength. The war horse is a false hope for salvation, and by its great might it cannot rescue. Behold, the eye of the Lord is on those who fear him, on those who hope in his steadfast love, that he may deliver their soul from death and keep them alive in famine. Our soul waits for the Lord; he is our help and our shield. For our heart is glad in him, because we trust in his holy name. Let your steadfast love, O Lord, be upon us, even as we hope in…
입술로는 공경하나 마음으로는 아님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이사야 中 하나님을 입술로는 가까이 하면서…
나의 죄의 비참함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라는 말씀을 교리적으로 알 것이 아니라, 나의 양심과 지식에 의한 죄책감이 아닌, 하나님의 법이 드러내는 나의 비참함을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속에서 나오는 모든 악함 — 그것이 보여 주는 나의 부패한 것을 알고, 내게선 도무지 선한 것이 나오질 않고 또 나올 수 없다는, 그 비참함을 나는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는가.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시편 119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