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고난과 하나님 나라

    내겐 컴플렉스가 있다. 지금까지 편안한 삶을 지내왔다는 컴플렉스다. 주후 3세기 동안 그 극심한 환난과 핍박을 견딘 성도들을 훗날 무슨 낯으로 뵐까…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안과 안전이라고 하는 것, 그것과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가 그 영광의 정점에 이르는 과정에 통과해야 할 고난 (골 1:24). 이 둘을 조화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하나님 나라의 도리에 무식한 초짜니 당연하지. 아, 그러나 지금까지 품지 못했던 마음과 관념 하나가 나를 스치고 갔다. 그것은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감히 함부로 누릴 수 없는 큰 영광이라는 것. 그런 높은 영광은 나 같은 것은 감히 떠올려볼 자격도 없다. 어줍짢은 도덕과 윤리관을 가지고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의 길이라 여기며 나갈까 두렵다. 나의 비참함을 나는 더욱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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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하나님

    신앙의 한 모습은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것인가보다. 처음엔 예수님이 내 죄값을 대신 받으신 분 그래서 그분으로 인해 내가 죽어 천당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로 알았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살아계시지만 현재로서는 신앙의 모범이 되시는 분으로 그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겐 그분의 모습을 닮아갈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수행과 자기훈련,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을 본다고 하여도 내가 신앙의 백두산을 오른다 하여도 저 하늘과 같이 높은 예수님의 모습에 비하면 늘 바닥이다. 사실, 백두산을 오를 능력은 커녕 진흙 웅덩이에서 뒹구는 것이 나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었다. 나 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은 그 인격을 아무리 씻고 손질해도 왕께 나아갈 수 없다. 더러운 부분만 잘라내어 그리스도의 깨끗한 것으로…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순서

    어린 아이의 옹알이와 어린 아이의 즐거움과 어린 아이의 표현을 받아주어야 한다. 대구를 해 주어야 하며 즐겨 가고 싶어하는 곳에 함께 가 주어야 하고, 또 자기의 시각에서 말하는 것을 같이 바라 보아 주어야 한다. 아직 육체의 힘과 지성의 힘과 마음의 여유가 강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있어야 할 팔과 다리, 손 발 눈 코 잎 모든 것을 다 갖춘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다. “넌 왜 말을 바로 못하니?” 따지는 그의 눈은 바로 뜨여 바로 보고 있는가? 주께서 기르시는 것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향해 장성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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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개과천선이 성경이 말하는 새 사람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새 사람과 옛 사람의 구분은 전인적인 것이다. 선한 것은 새 사람이고 악한 것은 옛 사람의 일이라 함이 아니다. 선도 있고 악도 있고 미도 있고 추도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자연인의 전체적인 모습이 옛 사람이다. 거기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있고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하는 것도 있다.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 그대로 가지고 와서 열심으로 자기 노력을 다해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을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의 생활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나 우리는 암매하고 무지하여, 이 옛 사람의 일을 그대로 추구하기가 쉽고, 죄를 회개하는 일에서도 진정으로 죄에 대해 책망하시는 성령님의 찌르심 보다는 섣불리 나의 도덕심에 의한 가책으로 뉘우치고 돌아서기가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또 그 잘못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성신께서 책망 하실 때는 책망을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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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배도 | Apostasy,  복음 | Gospel

    역사적 신앙고백과 이단

    요새 구원파의 주장에 조금 관심을 가져봤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왜 이단인가 아닌가 토론하는 곳에도 가봤다. 이단이던 아니던, 내 마음을 항상 무겁게 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만 옳다”는 주장들이다. “…이래야만 참 교회고 … 이래야만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이다.” 이런 식의 주장들이 특히 복음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때면 더더욱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냐면, 대개의 경우 그런 말들을 하는 심저는 자기가 구원받은 어떤 증거를 자기 안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믿음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내게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구원 받은 증거로 삼으려고 하는 노력일 때가 참으로 많다. 물론 영생이 있는 사람은 그 생생한 현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영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오히려 자기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본말을 전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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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절제

    ‘아, 이걸 고쳐야겠다’ ‘아, 이걸 붙들어야겠다’ 기회가 있다고 함부로 나서 주께서 주신 능력을 쓰고 정력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 성령님께서 승인하시고 지시하시는 그곳에 힘을 쓰고 능력을 발휘하였던 삼손 처럼, 나 자신이 그 무엇이 된 것 처럼 인정하는 잘못을 범치 말고 늘 성신님을 의지하여야 하겠다. 이성 없는 짐승처럼 방황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의 지혜로 가르쳐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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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신학 | Theology

    제한속죄와 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값을 하나님께 지불하셨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책 까지 다 주님은 대신 받으셨다. 그것은 2000년 전의 일이었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그것은 이미 뚜렷한 사실로 서있는 것이고 단지 나는 시간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은혜가 내게는 2000년 후인 지금 임하였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를 기다리셨다가 이제 비로소 2000년 전의 예수님의 그 죽음을 나를 대신한 죽음으로 인정해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이미 그 안에서 창세 이후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의 죄 값을 하나님은 예수님에게서 받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것일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죄인들의 죄 값을 받으셨으므로 그 누구도 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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