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성령님만 의지하는 생활
성신을 의지해서 나갈 때에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성신님을 부여잡는 간절한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혹은 속으로 끊임없이 ‘아, 아버지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내가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하다가는 또 넘어지겠습니다.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나를 꼭 붙들어 주옵소서. 나는 주님만 의지합니다. 무엇이 나를 지탱해서 하나님의 자식다운 거룩한 품성을 나타내겠습니까? 내가 훌륭하지 못할지라도 내 장성의 분량에 합당한 만치는 하나님 자식답게 이제 나타내야겠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하는 간절한 마음의 요구가, 그런 기도가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무엇도 의지해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다만 성신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돈이나 권력이나 다른 어떠한 경우나 자기의 꾀나 기타 그러한 것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꾀를 부려서 아마 이렇게 하면 용케…
흑백논리의 위험성
예컨대 어떤 건강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반드시 숨을 쉬게 되어 있다. 사람의 유전자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다음과 같이 지금 한 번 해 보자: “내가 지금 부터 숨을 쉬어야지”하고 1분이라도 숨을 쉬어 보도록 보자. 귀찮고 힘들어진다. 신경이 자꾸 쓰이고, `숨쉬는 것이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나’ 싶을 것이다. 왜? 우리는 숨을 쉬려고 해서 쉬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다. 숨을 쉬도록 말이다. 가만 있어도 계속 숨을 쉰다. 심장이 뛰는 것도 마찬가지다. 팔, 다리 근육과는 달리 심장 근육은 ‘아, 심장을 계속 움직여야겠다’ 해서 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심장이 뛰지 않았으면’ 해도 계속 뛰는 것이 심장이다. 끊임 없이 뛴다. 이것이 生命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심장을 칼로 찌른다든지…
Pneumati Peripateite (성령으로 행하라)
“ei zwmen pneumati, pneumati kai stoicwmen” — PROS GALATAS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 갈라디아서 5:25 아래는 김홍전 “신령한 생활” 중: 위의 말씀과 더불어 볼 것은 갈라디아 5:16 말씀으로“lego de pneumati peripateite kai epiqumian sarkoV ou mh teleshte”, 개역성경에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번역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말로 번역된 pneumati peripateite는 말 그대로 하면 갈라디아 5:25 말씀처럼 ‘성신으로 행하라’라 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성신으로 행하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自己)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끝나야 합니다. 그것 없이, 자기가 여전히 살아 있는…
수천년이 넘게 전수된 하나님 나라의 도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 몸의 지체라는 것을 떠나서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데, 별로 없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없다. 그러므로 참으로 그리스도인 답게 살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인한 새 사람을 입음으로 외에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그런데, 이 새 사람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악하고 선하고 예쁘고 더러운 것 중 선하고 예쁜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새 사람이라고, ‘사람’이라는…
성령을 좇아서 행해야
나의 자아와 싸우라는 말씀이 아니다. 나의 자아에서 나오는 모든 죄악된 생각, 또는 선을 이뤄야겠다는 의지 등 그 모든 것과 싸우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거듭나기 전과 지금과의 차이는 예전에는 그 자아 곧 옛사람이 죄의 노예였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혀 자유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죄의 종된 것에서 해방시키셔서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케 된 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사실이고, 실제로 하나님 나라적인 행보를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리스도를 향해 할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없다. 이것 역시 성령님께서 주시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성신을 좇아 행하라는 말씀에는 다분히 전적으로 성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성신께서 우리에게…
새 사람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심정
무엇이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심정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게 있는지 먼저 살필 일이다 이것을 또 다른 규칙으로 삼아 괜히 자신의 일을 그리스도와 억지 연결을 시키란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심정에서 모든 것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지, 우리 보고 새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심정을 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돌아볼 일이다 내게 무엇이 있는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심정이 있는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我相에서 나오는 일인 경우가 많다.
나무
나무는 자기가 원해서 심기우지 않았다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고 말했습니다. 나무는 자기 속의 생명수가 동산 땅 속에서 왔다고 그 물이 스스로 들어와 자길 길렀다고 말했습니다. 나무는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결코 심기운 동산에서 떠날 수 없다고, 자기에겐 그런 자유가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심기운 동산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사야 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