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영성 개념의 문제점과 성경적 경건의 길

    이승구 교수의 블로그에 “영성 개념의 문제점과 성경적 경건의 길”이라는 제목의 글이 몇 차례로 나뉘어 올라와 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신령한 생활, 신령한 사람, 거룩과 경건이라고 하는 것들의 개념이 모호하게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성경에 나오는 그런 표현들에 대해 이교적인 사상과 뒤섞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 올라온 이승구 교수의 글은 하나님의 나라, 교회,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 새 사람에게서 맺히는 품성의 열매, 그리고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등을 균형있게 조명하면서 성경적인 경건 곧 신령한 자의 자태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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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추상적 진리의 실증

    하나님 나라의 도리들이 그저 입으로 전해졌을 때는 그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 부터 시작하여 죄 사함이라든지 구원,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라고 하는 것 등의 내용이 다 그렇다. 그런데 그런 추상적인 것들을 실체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여주신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은혜 중 하나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시고 또 그로 인해 믿음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성령님의 은혜이리라. (사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진리’란 반드시 실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이는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증케 하심을 본다. 예전에는 어떤 잘못을 범해도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래서 되겠나” 또는 “이렇게 죄를 지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와 일부에게서 이러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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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 | Salvation,  복음 | Gospel,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비 만을 의지함

    나는 어리석음과 정욕과 암매로 둘러쌓인 사람이다. 시간의 길 위에서 죄로 오염된 행적을 그려나간다. 지난 날 나의 부패한 행위에 대한 쓴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며 또한 맛보게 된다. 오늘 나는 다시 또 결핍된 생각과 행동을 한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것은 이미 얻은 결과를 더욱 일그러뜨리는 것 뿐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목적지와 비교할 때 나는 그 십분지 일, 아니, 십분지 일의 십분지 일에도 못 미친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갖고 있는 부채 위에 나는 내일 또 다시 부채를 진다. 이러한 것이 쌓이고 쌓여, 십 년이면 십 년, 이십 년이면 이십 년, 삼십 년이면 삼십 년 그만큼 쌓인 큰 부채가 하나님 앞에 있고, 어느덧 내게 있는 것들을 돌아보노라면 온갖 악과 결핍과 오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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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

    나의 전적인 무능력과 부패의 상태를 깨달은 것 부터가 주의 은혜다. 그 뒤로 오직 주만 의지하고 나아가는 도리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 나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한 사람임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게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더욱 깊게 깊게 느껴간다. 이 절망의 벽은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 가야 오직 주만 의지하는 심정이 나를 지배할 것인가. 어찌할 수 없는 이 존재. 이 질그롯에 보배를 심으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드는 것 외에 무엇 있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시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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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예수님의 입법자로서의 권세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7장에 걸쳐 산상보훈을 제자들에게 베푸시니 제자들은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했다. 그들이 느낀 그 권세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권세를 느낀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말씀의 첫 부분 부터 율법의 참 의미에 대해 설명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 설명 방식은 단순히 율법 조항의 의미를 설명하신 것이 아니라 그 조항이 반영하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법(lex aeterna)을 선포하셨다 — 예를 들어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심으로 ‘간음하지 말라’는 조항은 ‘마음에 음욕을 품지 말라’는 원칙의 실정법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치심과 함께 “음욕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영원법을 선포하셨다 — 그리고 그 법을 선언하는 방식은 하나님께 의지하여 법령을 선포하였던 모세와는 달리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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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기독교인의 전형들

    열두 사도라는 이름은 우리가 존중히 여기고 얼른 높이는 것이지만, 개별적으로 가만히 따지고 보면 아까 이야기한 것과 같이 우리가 그 이름을 몇 사람이나 기억하고 있는가 의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인데, 이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무의미하고 희미한, 즉 무명무색한 사람들인가? 그렇게 무명무색한 사람들을 주께서 데리고 무엇을 하시려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이름이 없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참으로 기독교인의 한 전형적(典型的)인 예를 내놓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전형의 예라는 것은 뭐냐 하면,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해서 세상의 명예나 찬양이나 보상과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신실하게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고 그리고 자기에게 주신 바 임무를 그것이 작고 크고 간에 상관할 것 없이 충성스럽게 하려는 그것입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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