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이제부터 … 해야지”
“이제부터 … 해야지” “이제부터 … 하지 말아야지” 이런 각오는 다 아담적인, 다시 말해 옛 사람의 행위와 구습이다. 새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도리가 어떻다는 것을 깨달음이 있을 뿐이고, 그 진리가 자신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전적으로 성신님의 역사로 가능한 바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작은 선을 행함에 있어 옛 사람을 뒤집어 쓰고 나오기가 쉬운지…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기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은 것.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이 생각은 무서운 교만이다. 주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다. 왜? 겸손한 것이 미덕이라서? 아니다. 인간은 몇 겁이 지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질 수가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를 주께서는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인간의 세상에서도 자식이 부모 앞에서 당당해질 수가 없다. 이 죄 많은 세상에서도 자식이 부모의 은헤를 다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랴. 우리의 지은 죄를 간과하신 것과 그분의 오래 참으심, 그리고 베푸신 큰 은혜와 사랑 앞에서 감히 어찌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당당히 그분을 상대하겠다는 것인가?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그분께 부채를 지고…
경건의 훈련
세상의 가장 현자(賢子)라도 성령님 앞에서는 어린 아이와 같다고 했다. 가장 작은 선의 실천에서 죄를 범하기가 쉽다; 이 작은 선은 내 지혜와 지식과 능력으로 실행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는 그것이다. 아무리 작은 의(義)라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한 난 그것을 행할 능력도 이해할 지혜도 없음을 자각해야겠는데, 어줍짢은 양심과 도덕심으로 얼른 그것을 내 힘으로 밀고 나감으로 내가 자행자지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결핍과 죄 많음을 인식하고, 저 달나라 보다도 높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 앞에서의 내 전적인 무능력을 아는 것 — 그것은 성령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고, 그 깨우침 아래 늘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경건이요 매사에 유익한 경건의 연습이다.
신절을 지킴
도덕적인 책임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거룩하라고 요구하시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도덕적인 순결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순결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위치에 확고히 서 있고, 거기서 일보도 물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 개인의 덕성으로 비춰 볼 때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절개, 즉 신절(信節)에 해당합니다. 그 절개를 훼절(毁節)하게끔 위협하는 가혹한 시련과 핍박과 환난이 임할 때, 이 싸움은 자기가 죽어서 끝난다 하고서 끝까지 타협치 않는 이런 것들이 절개요 정절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어린양의 신부들을 가리켜 “흰옷을 입은 정절이 있는 자들이라”고 하여 이렇게 정절을 아주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아주 기본적인 도덕적인 상태요 속성으로서, 거룩하다고 할 때는 신절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 中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6:13 (기도회 시간에 성찬을 대비해 말씀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과연 가한 일인가, 불가한 일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면 마치 음식이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는 것 같아, 배를 위해 음식을 먹던지 음식을 위해 배를 쓰던지 그것을 금할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옮겨 놓으신 — 하늘과 땅이 멀어서 닿을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펴신 팔로 옮겨놓으실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구속이라고 말하는 — 위치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의 지체로 사는 거룩한 위치이다.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음식을 위해 배가…
하나님을 사랑함
죄를 미워하기를 노력하기 보다는, 더 거룩해지기를 노력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그분께 나의 전부를 드리기를 원해야 하며 그분은 나의 전부를 받으셔야만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죄를 싫어하게 되어 있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습성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습성을 없애셨다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정을 주셨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욕심(慾心)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던 옛것이 미워지는 것이다.
마음을 씻는 것은 믿음의 독특한 작용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 행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