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성령으로 행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이 하는 일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다. 그럼 누가 육신에 있는 자들인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그리스도의 영 곧 성신이 없는 사람이 육신에 있는 사람이다. 그럼 누구에게 성신께서 거하시는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그 사람들에게 계신다 (고전 12:3).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육신에 속한 일을 받지 않으시는데, 그리스도께 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일을 그대로 도모하면서 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육신의 일이란 무엇인가? 죄 짓는 것 만이 육신의 일인가? 아니다. 육신의 속한 사람이 하는 그것이 육신의 일이다 — 거기엔 진리를 추구하고 선행을…
그리스도인 곧, 그리스도의 지체로 사는 것은 오직 성신님만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에 인간과 하나님의 합작은 하나도 — 단 하나도 없다. 자신의 한 없는 가난함과 결핍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깨달음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한 우리를 예수님께 접붙여서 그분의 생명력을 통해 살아 갈 수 있게 하신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5:7)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처음 듣기엔 참 거북하다. 왜? 인간의 본성이 자기의 힘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의 결과는 단 하나: 자기 자랑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인간에게 무슨 능력이 있단 말인가? 죄를 죽이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자신의 결핍을 알아야
그런데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할 것은 본질적이고 근원적으로 생각할 때, 세상에서는 어떠한 성자(聖者)라도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죄가 없다고 말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죄와 상관없이 죄를 안 짓는 생활을 한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고,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단 일초간이라도 죄라는 세계를 떠나서 사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단 일초간이라도 죄를 안 짓는 시간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죄를 안 짓는다든지 짓는다든지 하고 말할 것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 하는 말을 할 것이 없습니다. 단 일초간이라도 죄를 안 짓는 시간이 없고 늘 죄…속에서 사는 사람이니까 그렇습니다…나 이외에 바깥에 죄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엄격하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에는 내 생활 전부가 죄라는 것입니다. 내 생활의 가장 의롭고…
거룩한 생활의 의미와 자태
무엇이나 주를 위하여 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출애굽기를 배우면서 생각한 대로 거룩한 위치에 서 있는 생활입니다. 어떤 위치냐 하면 주를 위하여 사는 인생의 위치입니다.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그 뜻을 위해 우리를 세상에서 뽑아내사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6:18에도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사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 베드로전서 1:15-16에서는 레위기 11:44을 인용하여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생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우리가 중요히 생각할 말씀으로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믿음으로 행하는 자태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하는 말을 해석하는 중인데, 그러면 믿음으로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를 지금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내가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어디를 가면 거기에 갈 이유와 어떤 목적이 있고 가서 무엇을 하겠다든지 무엇을 이루겠다든지 하는 특별한 동기나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와 목적이라는 지적(知的) 내용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나와야 하느냐 하면 믿음의 요소인 하나님께 대한 지식에 근거를 두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에 근거를 둔다는 것이 첫째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믿음으로 한다는 말이 다 성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요소인 지식은 그것이 믿음의 요소가 되기 전에는 그냥 지식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성경을 통해서 나의 사색과 진실한 연구 과정…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선을 행해야 하기에 선행하였다면, 그것은 자기의 선의지를 섬긴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이 아름답기 때문에 선행하였다면,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면 형통하기 때문에 선행하였다면, 그것은 행복의 신을 섬기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이 법이기 때문에 선행하였다면, 그것은 법을 섬긴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길을 따른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다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입는 사람은 자기에겐 하나님 나라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룰 능력이 없음을 안다.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음
그러나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든지간에 인간이 자기의 힘, 곧 자기의 혈과 육의 힘으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그 뜻을 행하려 하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가령 아주 쉬운 일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인 이상 인간의 혈과 육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항상 명심해야 할 이치이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0) — 김홍전, “복음이란 무엇인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