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 Theology
예수께서 지금 행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권
김홍전 목사님의 <내 증인이 되리라> 1권 제 4강 “제자들의 메시아관”을 읽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어떻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여야 하는지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 설명하신뒤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여쭙게 된다. 비록 역사 가운데 일어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이 위대한 사건을 그들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완성된 모습으로 펼쳐지리라 오해하였던 것이다.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은 완성된 모습이 아닌 시기를 거쳐야 함을 그들은 깨달아야 했다. 물론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잘못된 생각을 하기가 쉬운데 이러한 것들이 제 4강에 몇 가지 나열되었다. 제2위 하나님 — 요한복음 1장에서는 그분을 하나님의 로고스(λογοσ)라 표현하였는데 — 로고스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의 요점은 권선징악이 아님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선(善)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가치를 매기실 만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최선의 순간에도 거기엔 결핍이 있으며 부패가 있다. 윗 어른께 선물을 드릴 때에도 조그만 흠이 있으면 결례로 생각하거든, 하물며 절대의 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거룩하신 분께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 여하에 응당하게 다스리신다는 것과, 우리의 어떤 행동들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뿐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발휘되는 것은 오로지 성령님의 역사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무지 조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것이 없고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구약 열왕들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선악 여부에 따라…
예정과 선교
어제 교회에서 어떤 선교사님의 고백을 들었는데, 처음 선교를 떠날 땐 “예정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선교를 하겠는가”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선교의 어려움을 체험한 후 이제는 “예정이 없다면 어떻게 선교를 하겠는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더 열심을 내야 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이유는 주께서 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요, 그들에게 나아갈 것을 주께서 명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열심을 내느냐에 따라 상대가 구원받을지 안 받을지 영향받는다면, 그것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무수한 반대와 핍박을 받고도 기뻐하였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으리라. 하나님의 나라가 참으로 임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으리라. 믿고 의지할 분은 상천하지에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김홍전 박사님의 책
갓피플 CEO의 블로그에 김홍전 박사님의 책을 읽다가 느낀 소감이 짤막하게 있다. 그 게시물을 읽으며 크게 동감했다 — 그것은 내가 김홍전 박사님의 책을 읽다가 느낀 그것이었다; 한 겨울 꽁꽁 언 강물을 깨고 한 바가지 퍼다 머리에 부은 느낌 — 빛 앞에 나의 암매와 어리석음과 부패와 저회적 상태가 훤히 드러나고, 하나님의 비류없는 높으심과 크심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호방한 사상의 압도. 그 후, 하나님 나라의 도리가 아닌 사람의 도덕 윤리관이 만들어내는 신학이 얼마나 어린 아이의 말장난 같은 것인지 목도하게 되었다. 김홍전 박사님을 예언자로 쓰임 받은 하나님의 그릇으로 느끼는 것은 나 만이 아닐 것이다.
마귀가 아닌 자기 욕심에 유혹 받아 죄를 지음
나우웬12 님의 블로그에서 사람의 죄성에 대한 존 오웬 목사님의 인용을 읽었다. 거기엔 부패한 인간의 본성 속에서 나오는 추악함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렇다. 자기 마음 속에서 이는 유혹들을 마귀와 귀신의 탓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으나 죄 가운데 태어난 우리는 마귀가 손 끝 하나 건들지 않아도 스스로 온갖 추악한 것과 더러운 것들을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다. 마귀와 그 국권 세력은 사람이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고 죄 가운데 지내는 것이 용이하도록 이 세상 가운데 역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마귀와 그 휘하의 귀신들도 대 심판주이시며 절대의 통치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 일개 종의 위치에서 허락된 궤계를 꾸밀 뿐이다. 지극히 높으신 성자(聖子)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거니실 때 때때로 귀신들린 자들과 마주친 일이 있으신대, 그 귀신들은 자기들을 영원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기 싫어함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 눅 16:27-31 성경을 믿지 아니한다면, 과학적으로 온 인류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이것은 실제로 밝혀졌다), 노아의 방주를 찾아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보여 주어도, 설령 죽었던 모세가 다시 살아서 온다 하여도 믿지 아니할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인이 사회에 큰 봉사를 하고 공헌을 하고 덕을 끼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은 특정 시대에 대한 예언이 아니다
한 때, 구약에서 묘사된 하나님과 신약에서 묘사된 하나님은 뭔가 다르고,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한테만 주신 것이며, 구약 시대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이것이 최악이다, 로마서의 가르침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이다)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다 나의 암매 때문이며 성경을 볼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어느 한 시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에 그분의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그것을 보는 것은 성신님의 은혜다. 위와 같은 것을 생각해보더라도 요한계시록을 미래에 국한된 책으로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요한계시록 자체가 이미 사도 요한이 그것을 기록하던 당시의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내용은 시대를 넘어 모든 교회가 귀 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고 또한 그의 환상들도 전 시대에 걸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