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교회가 하나 될 수 없는 이유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 로마서 15:5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참 인내와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다. 그 목적은 우리로 그리스도를 본받게 함이다. 또 그것을 위해 우리의 뜻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세상과 교회가 하나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세상은 어디까지나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하나로 뭉치자고 한다; 하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류없는 탁월함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 되고자 한다.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 로마서 15:4 “전에 기록된 바”라 함은 구약 성경을 가리킨다. 그것이 기록된 것은 신약의 교회 가운데 있는 우리의 교훈과 인내와 위로를 위해 베푸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을 신약 성경 보다 하위 취급하는 사람들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높으신 분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 하나 마음에 새겨야 마땅하다. 신약의 계시는 구약의 터 위에 기록 되었고, 구약의 계시는 신약의 조명 아래 드러난다.
예수님과 세상의 비방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5:3 하나님 나라 앞에서 ‘자기’라는 것이 없어져야 함을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본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 인용된 말씀은 시편 69편 9절 말씀이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자신을 잊게 만드셨고 또, 하나님을 향한 비방을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고 혹은, 하나님을 위해 비방을 받으셨다는 말씀이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을 비방하는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명예와 인정을 바라는 것은 결코 우리가 취할 것이 못 된다.
기독교인의 이웃 사랑이 갖는 목표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 로마서 15:2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아니다; 최종 목적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는 데에 있다;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담는 데에 있는 것이다. 분명히 배울 수 있는 것은, 기독교 도덕의 목표는 자기 자신을 성인으로 만들거나 종교귀족으로 만드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 거룩한 몸 곧 교회를 나타내는 데에 있다는 사실이다.
“180” Movie
한글 자막 있음 [youtube=http://youtu.be/7y2KsU_dhwI]
회개하기 전에 먼저 사랑하심
내가 회개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받아주신 것이 아니다; 회개할 수 있도록 은혜를 먼저 베푸신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늘 먼저 사랑을 베푸신다. 감사합니다, 나의 구주 예수님. 주께 늘 단단히 붙어 있게 하소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1 4: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의(義)의 표준이신 예수님, 그리고 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 둘을 놓고 보았을 때 나는 내가 경멸하는 사람에 훨씬 (비교가 안 되게)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실상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저녁 예배 시간에 일깨워 주신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