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성장은 바른 이성의 사용을 동반한다
사람의 인격을 편의상 지적, 정적, 의지적 요소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성신께서는 우리를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데, 한국인의 정서상 신앙의 정적이고 의지적 요소를 균형에 어긋날 정도로 강조하기가 쉽습니다. 반대로 지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 나머지 변론을 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리에 대한 이해에서 뒤쳐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는 않으십니다. Brothers, do not be children in your thinking. Be infants in evil, but in your thinking be mature. (1Corinthians 14:20)
그리스도의 탁월함
우리의 고백도, 회개도, 의지도, 모든 것이 불완전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받아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이웃집 영감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십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밖에 없습니다.
제 3계명: 하나님의 성호를 부름
요새 교회에서는 십계명이 강해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라는 계명들이 있지만 무엇을 “하지 말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또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컨대 제 3 계명은 하나님의 성호를 헛되이 부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돌려 말해 하나님의 성호를 정당하게 부르라는 큰 특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욕심을 위해, 또는 다른 헛된 이유로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그런 것을 방지하고자 하나님의 성호를 입에 담지 않으려 하다가 결국 성호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발음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고 “야훼”가 가장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확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성호를 함부로 부른 사람이 자기 죄를 자각했을 경우 그 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전자렌지에 반숙 계란 또는 물 가열시 위험
교회는 사회 선도 혹은 개혁 단체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삭막한 현대 사회 속에서도 공중 도덕과 법을 잘 지키고 이웃을 돌아보며 나눔을 실천하고 근실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인/비기독교인 할 것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만 할 일입니다. 그런 것을 가르치기 위해 종교를 들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도덕적 삶을 가르치는 것을 공교육에서 발견합니다. 건전한 사회인을 길러내기 위해 종교 단체를 조직할 필요는 없습니다. 종교와 상관 없이 사회 봉사 단체 또는 사회 정의 실현 단체 등을 조직할 수 있고 또 그런 조직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존재 의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단체든 그 단체가 성립 될 때는 고유의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빈민 구제 단체가 부족하거나 사회 정의를 위한 시민 단체 또는 자선 사업체가 부족해서 교회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일들은…
율법은 복음을 믿을 것을 요구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위의 말씀에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속죄의 법과,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그 속죄 제물을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다는 복음을 봅니다. 사람이 무엇을 준비해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을 사람이 믿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만족시키면 영생을 주신다는 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이지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기” 때문에 (이사야 64:6)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갈라디아서 2:6) 하나님께서는…
성경은 개인의 가치를 최고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요한복음 10장 3절을 보면 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양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양 하나 하나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아신 예수께서는 개인을 군중의 부품 같이 취급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각 사람의 개성과 필요를 다 아시고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나 하나와 예수님을 비교하자면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온 인류와 예수님을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과도 예수님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분 앞에서는 나는 찌끼 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개인의 가치를 전체 속에 파묻어서는 안 되지만, 그 가치가 가장 높은 가치는 아닙니다. 나 한 사람 보다 예수님이 더 중요하고 내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예수님의 몸이 지체인 나 보다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할 때에도 아드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