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공부 | Scripture Study

    Some Little-Known Miracles of Jesus (예수님의 잘 안 알려진 기적 몇몇)

    At home bible study we are tracing and studying the life of Jesus, with the aid of the book “How Christ Walked on Earth” by Hong-Chun Kim (in Korean). Recently we studied the miracle of Jesus walking on water (John 6:16–21). I was well aware of the story, but this time a detail that I didn’t notice before came to my attention (pointed out by Rev. Kim, the author of the above mentioned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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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왜 (어떤) 개혁주의 신자들은 아집 센 사람 같은가

    스캇 클락 (R. Scott Clark) 교수의 블로그에 “Why Are (Some) Reformed People Such Jerks“란 글이 올라왔다. 개혁주의 또는 칼빈주의 신자들 중엔 고집이 세고 드세게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멀리 볼 것 없이, 그런 꼴통 중 괴물이 바로 이 글을 쓰는 내가 아닌가 싶다. 이 자리를 빌어 내가 아는 분들 중 내가 그렇게 무례함을 범한 것에 대해 사과드리고 용서를 받고 싶다.

  • 구원 | Salvation,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내가 아닌 그리스도

    요새 교회에서 저녁 예배 때는 욥기가 강설되고 있다. 아직은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을 보고 있다. 그 세 친구들의 얘기에는 부분적으로 옳은 얘기도 있으나 결론적으로는 그릇된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가지 가운데서도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이 세 친구들의 얘기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의 생사화복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 세 친구들을 탓할 수 만은 없는 것은 그들이 살던 시대는 아직 계시의 초반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세상이야 윤리를 가르쳐도 나 개인을 얼마나 고귀하게 만드는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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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 Theology

    성경에 나타난 신(神)개념은 진화하였는가

    성경을 비판하는 부류 중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대조시키면서 신(神)개념이 무자비하고 엄한 히브리 민족신의 모습에서 사랑이 많고 포용력 있는 전인류를 위한 신 모습으로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근거 몇 가지만 되돌아보려고 한다. (1) 아브라함의 기록 자주 등장하는 예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한 기록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인신제사를 요구하신 것일까? 아직 여러모로 인류 문화가 현대에 비해서 미개하였던 그 당시의 아브라함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했음직 하다. 그 때엔 다른 종교들 가운데 인신제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도 그런 제사를 원하신다고 생각한 것이다—바로 이러한 오해를 고쳐주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실제로 이삭을 죽이려 하자 이삭에게 손 대지 말라고 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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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 Theology

    그 날과 그 때는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하신 이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이 신비로운 글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에 대하여 적고 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했고,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이 예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같은 본문 14절). 이와 관련하여 종종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은, 그럼 어째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느냐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36 즉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어째서 아버지는 아시지만 자신은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는가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기록한 것과 서로 상충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이것은 근거 있는 질문인데—다만, 그 근거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자태에 대한 오해 위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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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 Theology

    삼위일체 교리와 관련 이단설

    요새 교회 성경공부 시간에 삼위일체에 대하여 상고할 기회를 가졌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써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이 다 감싸안을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 주위의 그 어떤 비유도 불완전하며 차라리 방해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세 인격으로 나타나시지만, 하나님은 결코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다. 그러나 한 분이 세 분인 것 처럼 행하시는 것도 아니다. 그 럼 왜 이처럼 모순되어 보이는 교리를 기독교는 갖고 있는가—물론 대답은 성경이 그렇게 하나님을 계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위일체가 결코 모순이 아닌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물리적인 형체를 갖고 계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본질적’이란 말은 중요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육체는 따로 논해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삼위일체의 중요성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와 연결하여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와 관련된 이단설이 이미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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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 | Salvation

    교리에 대한 믿음이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과 관련된 교리들을 믿는다는 것 보다 예수님 당신을 믿는 것이란 이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바른 교리를 믿는 것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보다 예전엔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은 부분들도 나온다. 요 근래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후의 이야기가(마 17장) 강설되었다. 거기 보면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결국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는데, 제자들은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하고 묻는다. 이것은 자기의 영력(靈力)에 대한 의문던지 또는 자기네가 예수님을 본 그대로 흉내냈는데 왜 안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일 수 있다. 신앙을 이러한 식으로 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제자들의 이 질문을 나의 질문이라 생각했을 때,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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