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생활론에 있어서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이

    예전에 에 대해 얘기할 때 잠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기독교의 생활론을 결국에는 사랑하며 살으라는 것으로 이해할 때 다른 종교와 생활론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고, 결국 누구를 믿느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살아가는 모습과 방향에서는 종교 간에 차이가 없다는 다원주의적 착상이 들어서게 된다 [1]. 그러나 기독교의 생활론은 “내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증시가 불가능 하다”는 큰 사실 아래 “오직 성령님께서 만이 이루신다”는 큰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효”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지향하는 것은 나 개인의 인격 도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완성”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의 생활론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반석이 된다. 이것을 떠나서 무슨 생활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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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일본 신도(神道)의 위협

    근래에 일본의 개혁장로교회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보낸 편지를 읽어보았다. 일본의 자민당은 신도(神道)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교육을 바꾸려 하며 또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야스쿠니 신사 등과 같은 일본의 전통적인 신사에서 절하는 것을 종교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국민의례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일제시대 당시 한국의 교회들에게 신사참배를 요구할 때 사용하던 바로 그 거짓말이다. 교묘한 기만이 여기 숨어 있다. 목사님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깊게 느끼고 있으며 함께 기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그는 앞으로 다가올 세대가 겪을 어려움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린 세대들에게 신앙의 정절을 지키도록 잘 가르칠 수 있도록, 그리고 일본인들을 주께로 불러오는 도구로 신실하게 사용되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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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참된 경건의 능력

    마라톤 맨 님의 블로그에 일제시대 당시 조국 교회의 친일 행적을 나열한 글이 올라와 있다. 그것을 읽으며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런 동일한 고난 가운데 쳐해져 있을 때 과연 신앙의 정절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일제의 만행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입에 담기도 무섭고 더러운 일들을 자행한 그것이었다. 총, 칼, 작두 등을 가지고 차마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없는 온갖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다. 그런 공포와 폭력 앞에서 난 절대로 주님을 배반치 않고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할 사람이 누구랴. 나의 결론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주 기개가 높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범인(凡人)들이야 어쩌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주의 은혜라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할 수 있으리라는 것 뿐이다. 주 예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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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어린 아이들 처럼

    “우린 아이들 처럼 그렇게 살아가요. 모든 것을 믿고 맡기잖아요” — 좋은씨앗, “어린 아이들 처럼” 중에서 우린 고아들이 아니므로 이 세상의 수많은 고아들처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고민하며 마치 부모 없는 자식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벌써 우리의 것이므로 우린 혼자 힘으 무엇을 이루어 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고아들처럼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매일 자기가 벌어 먹어야 하는 고아가 어째서 항상 풍족한 부자 집 아들을 멸시한단 말인가? 어째서 자유의 아들이 종들을 부러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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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 | Salvation,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잘 믿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자신이 단순히 예수님과 관련된 교리를 승인하는 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 그 분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지 구분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차이점을 깨달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내 믿음이 얼마나 훌륭한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았으면 깨달은 만큼 예수님께 모든 짐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그 분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잘 믿는지 고민한다는 것은 참으로 믿으려고 하는 소치가 아니라 여전히 “나는 잘 믿고 있다”는 자기(自己)를 확인하려는 아상(我相)에 불과하다.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자. 예수님의 인자하신 품에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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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언약의 자녀들이 누리는 복

    오늘도 교회에서 임신 소식을 두 개나 접했다. 교회에서 수 년 째 새로운 생명이 끊이질 않고 태어나고 있다. 매 주일 항상 누군가 임신 중이다. 예배 시간 마다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언약의 자녀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자연스런 성장이다. 이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고,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히 많은데, 이 아이들은 매 주일마다, 그리고 그 가정에서 매일, 하나님의 그 신령한 진리의 말씀을 공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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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 | Salvation,  기도 | Prayer

    죄의 추악함

    사람 속에 있는 죄의 추악함을 느낀다. 가르침과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죄성이 분출될 기회와 가능성이 적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죄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성인 군자일수록 자신을 반성하고 매일 참회록을 쓴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세상에 퍼져있는 참혹하고 수치스러운 죄악들을 볼 때 그러한 죄악의 근원이 내 마음 속에도 있다는 것과, 또 때를 따라서 그것이 정도만 약할 뿐 미약하게 발산되는 것을 확인한다. 그럴 때 인류의 커다란 죄악 가운데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무고한 살인과 학살이라는 극악한 죄악도 결국 미움과 탐욕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열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내 안에 있는 작은 미움 작은 탐심이 얼마나 더럽고 썩은 것인지 느끼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 눈 앞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조금이나마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