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나는 죽어야 한다

    나는 완벽히 죽어야만 한다. 내게서는 도무지 희망이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오직 나는 썩었으며 더 썩어질 것 그것임을 본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는가!”하고 다짐 해보지만 나는 그것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하루라도 더 살고 있다면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에는 피해를 끼치는 것이고 오직 그 나라에 피해를 안 끼치는 유일한 길은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그것이다. 하나님을 찾지 않던 이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찾으시고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그것인 이 죄인을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 영원한 생명을 심어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나마 이 죄인을 살려두실 유일한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새 생명을 내게서 드러나게 해 주시는 일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그와 함께 살아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이 복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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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가능성과 하나님의 인도

    시간 속에서 어떠한 일을 이룰 가능성이 보이는 것,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앞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의 방법이 분명하지만, 보이는 가능성이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이끄시는 길은 아니다. 그리고 때론 나는 가능성을 보고 전진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것을 막지 아니하시고 결국 벽에 부딪히게 하심으로써 중요한 교훈과 함께 그것이 길이 아님을 가르치시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주께서 어떤 길로도 인도하시는지 알 수 없을 때 보이는 하나의 가능성을 향해 주를 사랑하는 심정에서, 그리고 주를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분변치 못하고 앞에 보이는 가능성을 무작정 좇아 가기가 쉽고 때론 거기에 교묘한 이유를 붙여 정당화 하기도 한다. 특히 젊으면 젊을수록, 자기가 선택하고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참으로 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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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하나님을 두려워 함

    구약과 신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이 다르다고 —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은 엄격하신 분이시나 신약에서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고 — 생각하기가 쉬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베드로 앞에서 거짓을 말하였다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행 5장), 주님의 성찬을 분별없이 대하였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이 있었다 (고전 11장). 일일이 이런 것들을 나열하는 것이 필요할까; 구/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엄위로우사 한 호리도 남김 없이 토죄하시며, 또한 한 없는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하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라고 해서 우리는 얼마나 그 분을 업수이 여기는가? 사람 사이에도 존숭히 여김을 받아야 할 분에게 합당한 공경과 예를 다 하지 않는 것은 죄이거늘, 하물며 도무지 감히 상상할 수 없이 높으신 그 분께 대한 우리의 죄는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와 도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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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교회와 교단

    도서관 앞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요새 어느 교회에 나가느냐고 묻기에 교회 이름과 교단을 얘기했더니 “교단 얘기는 하지 말라. 머리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요새 개신교 교단들의 분열된 모습을 보면 분명 우리의 죄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며 머리가 안 아플리가 없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통합도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바인데, 그렇다고 교단의 문제를 우활하게 넘어가거나, ‘하나님 보고 교회 나가지 사람 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는 식으로 자신만 올곧게 서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인격적 완성이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양 무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그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은 양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르시지만 그 목적은 한 무리 가운데 거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 무리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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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 | Salvation,  신학 | Theology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기 싫어함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 눅 16:27-31 성경을 믿지 아니한다면, 과학적으로 온 인류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이것은 실제로 밝혀졌다), 노아의 방주를 찾아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보여 주어도, 설령 죽었던 모세가 다시 살아서 온다 하여도 믿지 아니할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인이 사회에 큰 봉사를 하고 공헌을 하고 덕을 끼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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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하나님 나라의 도덕은 결코 개인의 완성을 추구하지 않음

    여기서 우리가 중요히 생각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에게 선하라든지 의로우라든지 진실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요컨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각고면려하고 노력해서 의나 선이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종교가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종교도 정통이나 복음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고 아름답고 진실하라 할 때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경계냐 하면 성경은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스스로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본질적인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이것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저것밖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롬 7:19 참조) 그런고로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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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 Theology

    요한계시록은 특정 시대에 대한 예언이 아니다

    한 때, 구약에서 묘사된 하나님과 신약에서 묘사된 하나님은 뭔가 다르고,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한테만 주신 것이며, 구약 시대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이것이 최악이다, 로마서의 가르침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이다)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다 나의 암매 때문이며 성경을 볼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어느 한 시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에 그분의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그것을 보는 것은 성신님의 은혜다. 위와 같은 것을 생각해보더라도 요한계시록을 미래에 국한된 책으로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요한계시록 자체가 이미 사도 요한이 그것을 기록하던 당시의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내용은 시대를 넘어 모든 교회가 귀 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고 또한 그의 환상들도 전 시대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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