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주일
평소에 갖고 있던 의문 하나가 풀렸다. 안식일에 관한 것인데, 어제 성경 공부 시간에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잘 정리가 안 되었던 것이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였다. 분명 주일은 이스라엘이 안식일로 지키던 토요일이 아닌데, 교회에서 주일을 제 4 계명과 연관 짓는 것을 들어 왔던 터이다. 당시 내 생각으로는 제 4계명과 연관 지을려면 구약 교회처럼 토요일을 지키던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의미로서 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에는 십계명은 구약 교회에게 주신 것으로서 신약 교회인 우리에겐 제한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의 보편적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사실과 잘 맞지 않으나, 어쨌든 나는 십계명을 영원법(lex divnina)의 반영으로서 잘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일단 어제 깨우친…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전서 15:2)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부터 7장 까지 기록되어 있는 바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결미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산상보훈 가운데 주님께서는 여러번 하나님을 지칭하시면서, 하늘에…
그리스도인과 아상(我相)
사람은 항상 자기가 무엇이 된 것 같이 생각하기가 쉽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든지 자기가 새 사람이 되었다고 여기는 그 바탕 위에서 무엇을 주장해 나가기 쉽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 외에는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또 의지해서도 안된다. 마음 속에 그리스도 만이 전부인 심정, 예수님 만을 믿는 그 신앙. 그것 외엔 모든 것이 쭉정이와 같은 것이다. 오직 예수님께 참 안식이 있다. 거기에 참 안식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부드럽고, 자비와 인자가 가득한 예수님의 목소리.
5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없음
구원을 위해 의지해서는 아니되는 것들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서 배우는 바, 자신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는 것으로 자기가 구원 받은 증거를 삼으려 해서는 아니 된다. 물론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그 사람에게 임했다는 표징이 되나 (요 1:12-13), 이것이 곧 믿음이 구원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믿음이 구원의 표징 중 하나라는 것과 믿음이 구원의 증거라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왜냐면 구원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고 그 분의 생애와 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또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 사실이라든지, 주의 말씀을 받아 전한 선지자로 살았다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귀신을 내어 쫓고 또 훌륭하고 고귀한 일들을 평생 하였다 하더라도, 또…
복음을 배반함
나우웬12 님의 블로그에 가면 존 오웬의 책 “왜 그들은 복음을 배반하는가”에 대한 요약이 있다. 죄의 종인 우리에겐 하나님의 진노 밖에 남은 것이 없으나, 그런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원하사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시고, 이제는 자유의 아들로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게 하신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 가운데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복음을 믿노라 하면서도 여전히 사욕에 사로잡혀 거기서 저회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 가당한 일이겠는가. 그것은 복음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아마 그런 사람 모두가 복음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복음의 그 풍성한 내용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일지라도 그것은 무서운 상태이다. 주님, 주를 믿노라 하면서도 실상은 구원을 얻게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부인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후안무치한…
주의 은혜로 주의 말씀을 지킴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시편 119:11 무엇이 의의 길인지 알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기도 하지만, 이제 내가 느끼는 것은 주의 말씀으로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대적이 나를 취하려 할 때 나는 주의 말씀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주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주의 은혜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