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어린 아이의 옹알이와 어린 아이의 즐거움과 어린 아이의 표현을 받아주어야 한다. 대구를 해 주어야 하며 즐겨 가고 싶어하는 곳에 함께 가 주어야 하고, 또 자기의 시각에서 말하는 것을 같이 바라 보아 주어야 한다. 아직 육체의 힘과 지성의 힘과 마음의 여유가 강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있어야 할 팔과 다리, 손 발 눈 코 잎 모든 것을 다 갖춘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다. “넌 왜 말을 바로 못하니?” 따지는 그의 눈은 바로 뜨여 바로 보고 있는가? 주께서 기르시는 것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향해 장성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순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목적 중 하나
“성경이 참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면서 요구하신 바는 ‘네가 네 자신을 중심 삼아서 네 자신의 행복 증진과 네 자신의 향상이나 네 자신의 무엇을 늘 생각하는 그 세계에서 떠나서 나의 자식으로 거하는 세계로 들어와야겠다’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를 증가시키고 자기를 행복스럽게 하고 자기의 고통을 덜어야 하고 자기를 고귀하게 만들어야 하겠다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는 경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 하나님만을 전부로 의지하고 자기가 도무지 없다는 큰 사실이 기저적(基底的)으로 명확해졌느냐 하는 것이 항상 기본적인 일입니다.” — 김홍전, <하나님에 대한 묵상> 아직도 내가 가진 그 무엇을 발휘해야 한다는 단단한 바위가 내 마음 속에 있을 때,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김홍전 목사님의 강설. 그 뒤로 나의…
역사적 신앙과 이단
이단이라고 판정된 교회들에 있는 사람들과 소위 정통 교회에 있다고 하는 신자들의 논쟁을 살펴보았다. 발견한 것은, 정통 교회에 있다는 사람들도 서로 조금씩 얘기가 다르고 (알미니안주의와 개혁주의가 섞여 있는 것은 예사다), 이단 교회에 있다는 사람들도 자기네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성경교사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갖고 자기네 교회의 변호를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과 더불어 현대를 장악하고 있는 정신 문화의 풍조(trend)를 — 거기에는 그리스도교계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는데 — 종합해서 보면, 지금은 평등주의(egalitarianism)의 극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여기 가면 이 사람이 “이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말씀의 뜻이다”, 저기 가면 저 사람이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의미이고 구원의 모습이다”, 또 다른데 가면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모습이라”며, 수 많은 주장들이 나와 “이것이…
개과천선이 성경이 말하는 새 사람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새 사람과 옛 사람의 구분은 전인적인 것이다. 선한 것은 새 사람이고 악한 것은 옛 사람의 일이라 함이 아니다. 선도 있고 악도 있고 미도 있고 추도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자연인의 전체적인 모습이 옛 사람이다. 거기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있고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하는 것도 있다.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 그대로 가지고 와서 열심으로 자기 노력을 다해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을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의 생활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나 우리는 암매하고 무지하여, 이 옛 사람의 일을 그대로 추구하기가 쉽고, 죄를 회개하는 일에서도 진정으로 죄에 대해 책망하시는 성령님의 찌르심 보다는 섣불리 나의 도덕심에 의한 가책으로 뉘우치고 돌아서기가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또 그 잘못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성신께서 책망 하실 때는 책망을 받아야…
역사적 신앙고백과 이단
요새 구원파의 주장에 조금 관심을 가져봤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왜 이단인가 아닌가 토론하는 곳에도 가봤다. 이단이던 아니던, 내 마음을 항상 무겁게 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만 옳다”는 주장들이다. “…이래야만 참 교회고 … 이래야만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이다.” 이런 식의 주장들이 특히 복음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때면 더더욱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냐면, 대개의 경우 그런 말들을 하는 심저는 자기가 구원받은 어떤 증거를 자기 안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믿음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내게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구원 받은 증거로 삼으려고 하는 노력일 때가 참으로 많다. 물론 영생이 있는 사람은 그 생생한 현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영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오히려 자기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본말을 전도하는…
Google과 정보화 세상
1Gbyte에 해당하는 편지 저장 용량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이메일을 지울 필요가 없다며 Gmail을 찬사하고 있다. 그럼 Google은 다시는 이메일을 지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왜 그리 강조하는 것일까? 이메일을 편지함에서 바로 영구히 지울 수 있는 버튼 하나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왜 그것은 하지 않고 모든 편지를 휴지통으로 보내라는 버튼 하나 만을 만들어 놓고 다시는 휴지통을 비울 필요가 없다고 선전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그들은 편지들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받은 편지는 당신에 대한 최고의 정보원이다. 그것을 담고 있는 Google의 컴퓨터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그들은 아마도 그 정보를 이용한 맞춤식 서비스, 특히 정보 제공/탐색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다. Google의 컴퓨터가 각 사람의 편지함을 검색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의 성향을 분석해 맞춤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혁주의적인 음악의 필요
개혁신앙에 기반한 찬송시와 음악들은 많이 있으나, 소위 CCM이라고 하는, 기독인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음악 중 개혁신앙을 잘 표현해내는 것은 정말 희귀한 것 같다. 그나마 “좋은씨앗”이라는 듀엣 그룹이 개혁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바라기는 한 걸음 더 나가 단순히 개혁주의적인, 오직 은혜를 의지하는 그런 단계를 넘어 나 개인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 나의 하나님 보다는 우리의 하나님, 그리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완성 보다는 이 땅에 이미 증시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해 노래하는 곡들이, 그런 노래를 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