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헛된 비전

    주위를 둘러보면 자꾸만 희망을 가져라, 꿈을 꿔라, 비전을 가지라고 하지만 꽤 많은 경우 공허한 말들일 뿐, 진정한 희망과 소망 그리고 참된 평안을 약속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의 허영과 야망을 부추기는 온갖 구호들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 잠언 27:1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 야고보서 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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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믿음으로 행하는 자태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롬 14:23)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6-8)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 3:17)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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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그리스도의 지체로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음

    올 여름에 성약 교회 교우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가운데 가르쳐 주신 말씀이 다시 생각났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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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이제부터 … 해야지”

    “이제부터 … 해야지” “이제부터 … 하지 말아야지” 이런 각오는 다 아담적인, 다시 말해 옛 사람의 행위와 구습이다. 새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도리가 어떻다는 것을 깨달음이 있을 뿐이고, 그 진리가 자신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전적으로 성신님의 역사로 가능한 바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작은 선을 행함에 있어 옛 사람을 뒤집어 쓰고 나오기가 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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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기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은 것.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이 생각은 무서운 교만이다. 주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다. 왜? 겸손한 것이 미덕이라서? 아니다. 인간은 몇 겁이 지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질 수가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를 주께서는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인간의 세상에서도 자식이 부모 앞에서 당당해질 수가 없다. 이 죄 많은 세상에서도 자식이 부모의 은헤를 다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랴. 우리의 지은 죄를 간과하신 것과 그분의 오래 참으심, 그리고 베푸신 큰 은혜와 사랑 앞에서 감히 어찌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당당히 그분을 상대하겠다는 것인가?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그분께 부채를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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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경건의 훈련

    세상의 가장 현자(賢子)라도 성령님 앞에서는 어린 아이와 같다고 했다. 가장 작은 선의 실천에서 죄를 범하기가 쉽다; 이 작은 선은 내 지혜와 지식과 능력으로 실행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는 그것이다. 아무리 작은 의(義)라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한 난 그것을 행할 능력도 이해할 지혜도 없음을 자각해야겠는데, 어줍짢은 양심과 도덕심으로 얼른 그것을 내 힘으로 밀고 나감으로 내가 자행자지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결핍과 죄 많음을 인식하고, 저 달나라 보다도 높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 앞에서의 내 전적인 무능력을 아는 것 — 그것은 성령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고, 그 깨우침 아래 늘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경건이요 매사에 유익한 경건의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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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역사적 신앙의 부재

    옥한음 목사님의 현실 비판에서 값싼 복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살아 생전 무엇을 하더라도 믿음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값싼 복음이 교회에서 설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이것은 값싼 복음 정도가 아니라 변질된 복음, 다른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고 본다. 왜? 우리가 성경을 통해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배운 참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큰 죄책이 각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노력을 해도, 윤리의 히말라야를 오른다 해도, 하늘에 있는 달과 같이 저 높은 하나님 나라의 생활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날이 더 부채를 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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