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방식
그러나 우리 주님이 어떤 사람을 붙들고 말씀을 하실 때는, 그사람의 의표(意表) 이외의, 그가 생각한 이외의 전연 딴것을 가지고 이야기하시지 않습니다. 사람과 이야기하려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범위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은 전연 생각지도 않고 준비도 안 된 것을 문제로 내놓고 이야기하라고 하면 이야기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모처럼 시간을 얻어서 또한 그만한 기회를 타서 예수님께 나와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니고데모한테, 그가 전연 생각지도 않고 꿈도 안 꾼 이야기를 가지고 예수님이 마치 “너 이런 것도 모르느냐?” 하고서는 공격을 하듯이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일을 하시거나 사람을 다루거나 대하실 때 그런 방법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항상 자비롭고 따듯하게, 항상 가장 이해를 많이 하시는 분으로서 하십니다. 가장 이해를 많이 하시는 분으로서 니고데모 속에…
구원이란 무엇인가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살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 사람은 원래 행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거나, 그런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죄 없는 아담의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짓기 전의 아담을 그런 자리에 놓아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약은 “내가 네게 명령하는 것을 틀림없이 다 지켜라. 그러면 너는 살리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을, 더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네 현재의 생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아담은 그렇게 갔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이 내가 네게 명령하는 것이다. 그것은 짐을 지라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저기 선악 실과를 가서 따먹지 말아라. 그것 하나를 명령한다. 이 명령을 네가 지키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아담은 그것을…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6:13 (기도회 시간에 성찬을 대비해 말씀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과연 가한 일인가, 불가한 일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면 마치 음식이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는 것 같아, 배를 위해 음식을 먹던지 음식을 위해 배를 쓰던지 그것을 금할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옮겨 놓으신 — 하늘과 땅이 멀어서 닿을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펴신 팔로 옮겨놓으실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구속이라고 말하는 — 위치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의 지체로 사는 거룩한 위치이다.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음식을 위해 배가…
역사가 갖는 의미는 교회 없인 알 수 없음
사실상 역사의 주체는 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고대의 여러 위대한 능력들이 아닙니다.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나 메디아나 페르시아나 혹은 애굽이나 로마가 아닙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참된 의미에서 인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성적인 피조물의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역사의 주제(theme)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의 대권을 표명하는 사회(community)를 형성하면서 움직여 나가는 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해서 지금 그 일을 하시려고 하는데 모세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경건한 신앙과 간절한 충정을 가지고 결연한 태도로 이 세상의 모든 향락과 권세와 결별해 가면서 스스로 노예의 위치로 떨어지고 스스로 선택해서 노예 속으로 같이 들어가서 싸우려고 했지만, 모세가 알고 있는 한 그 동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는 문제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함
죄를 미워하기를 노력하기 보다는, 더 거룩해지기를 노력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그분께 나의 전부를 드리기를 원해야 하며 그분은 나의 전부를 받으셔야만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죄를 싫어하게 되어 있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습성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습성을 없애셨다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정을 주셨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욕심(慾心)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던 옛것이 미워지는 것이다.
마음을 씻는 것은 믿음의 독특한 작용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 행 15:9
성령으로 행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이 하는 일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다. 그럼 누가 육신에 있는 자들인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그리스도의 영 곧 성신이 없는 사람이 육신에 있는 사람이다. 그럼 누구에게 성신께서 거하시는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그 사람들에게 계신다 (고전 12:3).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육신에 속한 일을 받지 않으시는데, 그리스도께 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일을 그대로 도모하면서 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육신의 일이란 무엇인가? 죄 짓는 것 만이 육신의 일인가? 아니다. 육신의 속한 사람이 하는 그것이 육신의 일이다 — 거기엔 진리를 추구하고 선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