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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언약 (The Covenant of Works)

아래는 제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관심 있는 분들과 나누기 위해 정리한 것들입니다. 고백하건데 저는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Soli Deo Gloria!

행위언약의 성경적 근거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세아 6:7

호세아 6:7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언약을 어겼다고 하신다. 아담이 어긴 하나님과의 그 언약을 가리켜 언약신학에서는 ‘행위의 언약‘(covenant of works)이라고 통상 부른다. 이는 명칭에 대한 얘기고, 그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려면 ‘언약’의 뜻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언약의 일반적 속성

성경에서 ‘언약’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곳을 살펴서 종합해보면 언약은 기본적으로 양자(兩者)간의 약속으로서

  • 양쪽의 혹은 한쪽만의 이행사항이 있으며
  •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맹세한다는 준엄함 (약속 불이행시 임할 저주가 종종 동반됨)
  • 그 맹세를 실감할 수 있는 예식 또는 표식이 함께 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언약 가운데서 사람을 대하심

하나님은 사람과 본질적으로 다른 분시기 때문에 당신께서 사람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가지실 것인가를 친히 제정하시고 선언하시지 않으면 사람이 스스로 정하거나 알 수 없다. 그러한 ‘관계의 선언’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사람의 피조물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언약의 속성을 띠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말씀하시면 그것은 곧바로 사람의 이행의무가 되며, 사람이 그것을 불이행할 경우 심판을 면할 수 없기에 저주가 따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겠다는 말씀하시면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나온 준엄함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항상 언약 가운데 대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물론 하나님에게는 사람에게 언약을 베푸실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은 당신의 사랑을 나타낸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당신의 보이지 않는 언약을 사람이 상기할 수 있는 표식을 항상 주신다. (그러한 표식을 일반적으로 ‘성례’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선언이기 때문에, 만일 그 내용 가운데 사람의 이행사항이 있다면 그 언약은 사람에게 명령의 면모를 지니게 된다.

아담과 맺으신 언약 (창세기 1장-3장)

하나님께서 맺으시는 언약의 속성이 위와 같다면, 호세아 6:7에서 언급하는 아담이 어긴 언약을 발견하기 위해서 일단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언하신 관계의 방식을 찾으면 된다. 아담이 어긴 이행의무, 거기에 따른 저주, 그것과 결부된 표식 등을 가져온 하나님의 선언을 찾으면 된다. 물론 그것을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3장 사이에서 다 발견한다. 그것들을 하나씩 나열해보자.

이행사항.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다스리며 지키고,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준엄함 (불이행의 저주).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약속. 하나님 당신께서는 어떻게 하시겠다는 이행사항은 없었는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죽는다고 하셨으니, 그 반대, 즉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산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하나님의 이행사항은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살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것 뿐인가? 아니다. 동산 중앙에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말고도 생명나무가 있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고 쫓겨났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다면 생명나무 실과를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생명나무 실과는 영생을 상징한다. 생명나무 실과 자체에 영생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상징하는 표식이다. 종합하자면, 하나님의 이행사항 곧 약속은 다음과 같다: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생을 준다.

표식.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행사항과, 그 이행사항을 준수하면 얻게 될 영생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것은 멀리 볼 것도 없이 동산 중앙에 두셨던 생명나무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였다. 그것 뿐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안식하게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본받아 사람의 사역 역시 종국에는 안식이 있도록 하신 것이다. 안식을 맞이하는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지키는 시기가 무한정 계속될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생명나무 실과를 먹게하실 것이고, 그때에는 자신이 처음 창조될 때 받은 원시의 생명보다 더 영광스런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임을 기대할 수 있었다. 안식일이 영생을 누리는 영광의 상태를 상징함을 히브리서 11:4–9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담은 안식일을 누림으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 이행 여부를 시험하는 시기가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는 때가 있을 것이고, 그 때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면 자신이 지금 누리는 생명보다 더 나은 생명을 얻을 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이 하나님께서 아담을 어떻게 대하실 것인지 정하신 관계의 선언이다. 이 언약을 가리켜 ‘행위의 언약‘이라 한다. 이하로는 지면을 아끼기 위해 ‘행위언약’이라고도 부르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의 이행사항이 있기에 행위언약은 명령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호세아 6:7에서 아담이 어긴 것은 행위언약의 명령이다. 그 결과 아담 뿐만 아니라 아담과 자연적으로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저주 아래 들어갔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행위의 언약은 아담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인류의 총대(總代, federal head)로서 행위의 언약 가운데 두신 것이다. 이 사실은 로마서 5장 18-19절에서도 확인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행위의 언약을 맺으심으로 아담은 처음 창조된 흠 없는 상태로 무한정 살아가는 것이 아닌 유예(probation) 기간 아래 놓인 것이며, 그 기간에 겪을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종말에는 다시는 죽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는 종국의 생명(eschatological life)을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이다. 그 종국의 생명을 얻었다면, 그는 ‘가시와 엉겅퀴'(창세기 3:18)의 방해 없이 번성하며 땅에 충만함을 이루어 가는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위언약의 광의와 협의

앞 절에서 우리는 호세아 6:7에서 출발하여 창세기 1-3장에 나타난 행위의 언약을 살펴보았다. 언약신학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행위언약 아래 흐르는 원칙 즉, ‘명령을 지키면 영생을 얻는다’는 원칙을 가리켜 넓은 의미에서의 행위언약이라고도 한다. 정리하자면:

  • 협의에서의 행위언약: 하나님께서 아담을 인류의 총대로 삼아 맺으신 언약으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죽지만 먹지 않으면 영생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광의에서의 행위언약: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광의에서의 행위언약이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성경의 다음 구절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8:5)
  •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에스겔 20:11)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누가복음 10:28)
  •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로마서 2:13)
  •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로마서 10:5)
  • “율법은 믿음에서 난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3:12)

행위언약은 구원의 언약이 아님

광의에서의 행위언약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위에서 보았으나, 아담 안에서 이미 행위언약을 어기고 정죄함을 받은 인류는 결코 행위언약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20

다시 말하지만 행위로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은 (광의의) 행위언약이 무효화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인류가 아담 안에서 이미 행위언약을 어기어 잉태될 때부터 죄와 사망의 종으로 나기 때문이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로마서 7:10–14

구원의 언약을 따로 주심

사랑이 지극히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행위언약을 어긴 아담에게 구원의 언약을 베푸셨다. 사람이 뱀과 친구가 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뱀과 원수가 되게 함으로 당신과 가까이 두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그 구속의 성업을 이룰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다 (창세기 3:15). 물론 우리가 잘 알듯이 그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구원의 언약에 대한 표식으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것이 동물을 죽여 입히신 가죽옷이다. (구원의 언약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은혜의 언약 기사를 참조.)

아담이 실패한 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7–19

위에서 인용한 로마서 말씀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면서 둘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말하고 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죽었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영생을 얻으며, 아담의 불순종으로 정죄에 이르렀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유사점: 하나님께서 아담을 인류의 총대로 삼아 언약을 맺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에게 속한 자들의 총대로 삼아 언약을 맺으셨다.
  • 차이점: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어 자기를 총대로 언약 아래 있는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 데리고 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도 어김없이 지키어 자기를 총대로 언약 아래 있는 자들을 의와 생명으로 데리고 가셨다.

앞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영생을 얻는다”는 광의에서의 행위언약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아담이 행위언약을 어긴 결과는 아담과 아담에게 속한자들에게 임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위언약을 지킨 결과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들에게 임하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완전히 순종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그 동일한 부활의 생명을 주신다. 이러한 이유로 고린도후서 15:45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지칭하였다. 첫째 아담이 실패한 것을 둘째 아담은 성취한 것이다. 이 위대한 사실을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그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에서 들을 수 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햔복음 17:4–9

교회사와 행위언약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행위언약

행위언약의 실천적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