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사람과 하나님을 다시 화목케 하실 뿐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그 중보의 직무를 지금도 수행하고 계시며, 그 중보의 직무는 누구에게도 대리하시지 않는 고유의 직무이다.
왜 하나님을 뵙기 위해 중보자가 필요한가? 우리 각 사람의 죄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죄의 무게는 그 죄를 누구에게 범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누군가를 욕 보였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욕 입을 만한 사람일 경우와 아주 인품이 훌륭한 사람일 경우는 전혀 다른 것이고, 후자일 경우 내 죄가 커지는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어긴다던지, 나는 하나님을 모르노라는 식으로 하나님께 무례를 범했다면 그 분의 높으심 만큼 나의 죄도 커지는 것이고 그 죄 값은 그 분의 무한하심 만큼 무한하다.
우리 각 사람의 무한한 죄값을 십자가에서 맛보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 공로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사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예수님 외에는 우리의 죄 값을 해결할 방도가 없고 또 그 분은 한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 서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19 표준새번역
그리스도의 공로에 무엇을 더 할 수 없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19:30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그 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것이고 (“그 분 안에서”라는 말이 중요하다; 우리가 아무런 죄를 안 짓고 산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죄 있으나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공로 아래 우리의 죄를 사유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부자관계를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추가적으로 무엇이 더 요구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요구할 수도 없는 것은 우리의 의란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더기와 같은 것이라서 절대의 공의로 보좌를 삼으신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으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부정한 자와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으니, 우리의 죄악이 바람처럼 우리를 휘몰아 갑니다.”
이사야 64:6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분의 은혜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때문이지, 우리가 새벽 기도를 열심히 나가기 때문에, 또는 QT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또는 교회를 매 주 빠짐 없이 나가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을 수도 없고 덜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것은 그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까닭에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의 무엇을 의지한 자의 최후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결미 부분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아니라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해 행한 그 무엇을 의지한 사람의 최후를 본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1–23절
위의 말씀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을 “주”(主)라고 부를만큼의 믿음이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다. 분명하게 바른 믿음의 도리를 가르치고,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제거하고, 또 사회의 거악을 제거한 일들이 그런 것이리라. 그것을 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룬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심판의 때에 왜 그들을 자기들이 행한 그 무엇을 그리스도 앞에 내세웠는가? 차라리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누가복음 17:10) 아뢰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속의 성업을 의지했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한 이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무서운 선고를 받고 만다.
시작도 끝도 오직 그리스도
조금치라도 자기를 인정해서는 아니된다.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오직 그리스도의 공효로 되었듯이, 하나님의 자식 답게 살아가는 것 역시 오직 그리스도의 공효로 가능한 것이지, 자기의 의지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서 3:2,3,5
우리의 믿음을 지으시고 완성하시는 분 역시 그리스도이십니다: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o great a cloud of witnesses, let us also lay aside every weight, and sin which clings so closely, and let us run with endurance 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looking to Jesus, the founder and perfecter of our faith,
히브리서 12:1–2 (ESV)
모든 것이 그 분을 위해 지어졌고 그 분에 의해 완성됨을 우리는 믿는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16-17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0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요한계시록 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