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전서 15:2)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부터 7장 까지 기록되어 있는 바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결미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산상보훈 가운데 주님께서는 여러번 하나님을 지칭하시면서, 하늘에…
주여, 그 긍휼로
주여, 그 긍휼로 — 김홍전 주여, 나의 구주 예수여, 그 무한하신 긍휼로 제 죄를 사유하여 주시고 또 씻어 주소서. 곧 저는 죄인이오며 제 죄를 제가 아옵나이다. 주 예수 크신 사랑 의지하고 나왔나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모두 아시니, 날마다 저의 짐을 지시며 그 크신 권능으로 저를 붙드사 내 주만 따라가게 하소서. 구원의 즐거움을 제 안에 곧 가득하게 하시고, 제 속에 지혜를 알게 하여 주시사 주의 나라 큰 영광에, 영원한 그 영광에 제가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영원한 구주이신 예수님, 그 무한 자비하신 손으로 제 몸과 마음을 붙드사 주님만 섬기게 하소서. 주께서 제게 내린 사랑과 영원하신 주의 영광, 제 맘에 항상 사모하며 찬양하오니 받아줍소서. 요즘 자주 부르는 찬송이다. 솔직히, 이런 찬송을 부를 자격도 없다고…
하나님 나라의 부모와 자녀 관계 (2)
자식을 기르되 자식 개인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서 개인 개인의 인격이 구김살 없이 하나님의 자식답게 장성하도록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내 의사로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어려서 자기 은사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누군가 늘 돌아보아야 하고, 누군가 대행해 줘야 할 때의 일입니다. 큰 다음에는 부모의 의사로 자녀를 주장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진리를 가졌을지라도 성신님께서 그 진리를 쓰셔서 자녀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기만 바라는 것뿐이지, 강요한다고 해서 진리가 그 속에 들어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즉, 자녀가 성인이 되고 자기 주장을 가진 사회인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진리를 전하려고 하더라도 다른 사회인에게 전하는 것같이 전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렸을 때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또 의지하는…
하나님 나라의 부모와 자녀 관계 (1)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자녀 관계를 상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상속자라든지 상속을 시키겠다는 기업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가장 어른이 되시는 까닭에 가장(家長)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신 그 가정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그랬습니다. 그런고로 교회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 것인가 할 때,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시고 있는 한 집안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교회가 일종의 집안이라면, 그 실례(實例)는 가정에 있습니다…이 사실은 우리의 가정 생활에 중요한 도덕적인 의무를 깨우쳐 줍니다. 먼저, 부모가 자녀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생각하면서 자녀를 대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곧 자녀들에게…
신절을 지킴
도덕적인 책임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거룩하라고 요구하시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도덕적인 순결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순결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위치에 확고히 서 있고, 거기서 일보도 물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 개인의 덕성으로 비춰 볼 때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절개, 즉 신절(信節)에 해당합니다. 그 절개를 훼절(毁節)하게끔 위협하는 가혹한 시련과 핍박과 환난이 임할 때, 이 싸움은 자기가 죽어서 끝난다 하고서 끝까지 타협치 않는 이런 것들이 절개요 정절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어린양의 신부들을 가리켜 “흰옷을 입은 정절이 있는 자들이라”고 하여 이렇게 정절을 아주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아주 기본적인 도덕적인 상태요 속성으로서, 거룩하다고 할 때는 신절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 中
가정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을 길러내는 그릇
그리스도인 부부가 혼인을 하고 자녀를 낳음으로써 갖는 우선적인 특권은 세상 사람과 같이 단위 사회를 만들어 공동의 생활을 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생물적인 생육과 번성을 통해 가세(家勢)를 확장하는 데에도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가정을 이 땅에 두시사 세상 앞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써 구원과 심판의 도전을 제시하시려는 뜻에 있으며, 또한 그러한 일을 역사상 끊임없이 계속해 나가시기 위해서 당신의 백성을 그런 가정 안에서 기름을 받게 하시려는 뜻에 있습니다. 가정은 그런 거룩한 뜻을 이루시려는 데에 그릇으로 쓰입니다. […] 그러나 모든 가정이 그런 임무를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육이 없는 집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에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의 의미 (에베소서 5:22)
여기서 주의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순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든 하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자기의 의식을 다 버린 채 무감각한 기계가 돼 가지고 ‘이렇게 하라’ 하면 ‘예’, ‘저렇게 하라’ 하면 ‘예’, 그렇게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뜻을 더욱 궁구하고 살펴서, 그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식별해서, 그래서 우리가 알았을 때는 자진해서 즐겁게 성신님을 의지하여 순종하고 나갑니까? 그것은 물론 그렇게 자기가 인식하고 각성하여 자기가 확신한 다음에, 이번에는 자기가 성신님을 의지해서 자진해서 순종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이요, 그렇지 않으면 기계적인 굴종일 뿐입니다. 성경이 아내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기 남편에게 굴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