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1차 전도 여행에서 배우는 교훈 (김홍전 박사)
김홍전 박사의 사도행전 강해 제 6권 제 1강에서는 바울의 1차 여행에서 얻는 교훈을 정리하고 있다: 첫째, '어떤 방법으로 선교를 해 나갔는가?' 둘째, '어떠한 능력이 그들의 뒤를 따랐는가?' 셋째, '그 사람들의 경험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넷째, '그들을 협박하고 위협했던 큰 위험이 무엇인가?' 일단은 유대교의 열혈분자들의 위협과 협박이 있었지만, 가장 큰 위험과 위협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김홍전 박사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지적하고 있다. 끝으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태도 가운데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 내용이 매우 귀해서 여기에 다 옮겨 적어서 나누고 싶지만 그러면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요약을 하고 일부분만 인용을 한다. 정통과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전체에…
로마서가 쓰여진 배경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작성하여 보낸 주후 55-57년 즈음은 로마에 교회가 선지 벌써 20년이 넘은 시점이다. 주후 49년 클라우디우스의 칙령으로 로마를 떠나있다가 5년만에 로마로 돌아온 유대인 기독교도들은 교회의 분위기가 자신들이 알던 그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교회 분열의 싹이 자라기 쉬운 이 상황에서 바울은 사도로서의 권위나 카리스마로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시도 대신에 복음의 깊고 풍성한 내용을 전한다. 로마서 자체의 내용도 물론이지만, 로마서가 쓰여진 상황과 그 가운데서의 사도 바울의 행적을 통해 오고 오는 교회는 큰 가르침을 받는다.
사도에게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
로마서 15장을 읽으며 교회를 사랑하는 사도의 섬세하고 깊은 사랑을 본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따스운 것인지 느낀다. 봄바람이 살갗을 감싸도는 따스움이다.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
사도행전 13장 16절에서 41절에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 중에서는 이것이 바울의 첫 설교입니다. 누가가 압축력 있고 간결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 설교에, 사도 바울의 신학적 사상과 성경을 보는 관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김홍전 박사의 설교집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를 곰곰이 풀어가며 읽어보면 거기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대권이 면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문장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건져내셨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대로 예수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다…’ 즉, 바울의 사상에는 철두철미하게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정부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장 중요한 역사적 현실로 바울의 역사관에 서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라는…
바울 사도의 심부름: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갖다다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딤후 3:19) 바울은 감옥에 있을 때도 디모데에게 공부를 위한 책을 가져오라고, 그것도 가죽에 쓰여저 오래 갈 수 있는 것으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도의 태도는 우리에게 모범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 스펄전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성신의] 영감을 받고 있으면서, 여전히 책을 찾고 있습니다! 최소한 30년 동안 설교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찾고 있습니다! 왠만한 사람 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찾고 있습니다! 셋째 하늘까지 올라갔다 왔고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듣고 왔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찾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썼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바울이 복음을 다시 가르친 이유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 15:1) […]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라고 하고 있다. 바울은 이미 복음을 들은 사람들, 즉 복음을 듣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또 복음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시 “복음을 알게 하노니”라고 말하고 있다. […] 그러나 복음은 즐거운 소식이다. 즉, 항상 즐거운 소식인 것이다. 복음이 어제 진정으로 즐거운 소식이었던 사람에게는 오늘도 또한 그렇지 않으면 아니 되고 내일도 또한 즐거운 소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복음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과연 즐거운 소식이 되어 있는가? 많은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복음이 반드시 변함 없는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되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경우 많은 신자들은 복음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