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복음이 목격자의 증언을 기록한 것이라는 놀라운 증거들
4대 복음은 신문 기사와 신화적 이야기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요? 여기에 대한 피터 윌리엄즈 교수의 훌륭한 강의입니다. (누가 한글 자막을 달면 좋겠네요.) [youtube http://youtu.be/Z5vrFAAhpss] 정경에 나타난 정확성/탁월함은 상상했던 것 이상입니다. 외경은 도무지 비교가 되질 않네요. 신화적 이야기라고 종종 공격 받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관찰 (45:17) 또한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정과 종말을 상고하는 유익 (히브리서 12:18–29)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천당과 지옥이라는 상벌을 놓고 종교행위를 강요한다고 오해하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하나님의 택하심을 ‘이미 받은 자’라고 가르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믿기만 하면 앞으로 뭔짓을 해도 천당간다 가르친다고 오해하나, 성경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선택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삶을 위한 가장 큰 동기가 됨을 가르쳐준다. 이것이 예정과 종말을 상고하는 유익 중 하나이다. 히브리서 12장 18–29절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의 말을 민족해방, 노동해방으로 착각한 파라오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와 파라오에게 히브리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려 하니 보내주라고 말하자 처음에는 파라오가 완강히 거절하였다. ‘너희가 게으르니 종교 핑계를 댄다’며 오히려 고역을 더하였다. 그 후 어려움이 더하자 파라오는 ‘멀리갈 이유 있냐, 여기서 종교 행사 해라’ 하였지만 모세는 그럴 수 없다 하였다. 그래서 파라오는 ‘그러면 장정들만 가라, 다 갈 필요 있냐’고 말하였다. 그것 역시 안 된다고 모세가 말하자 파라오는 다시 한 번 양보하여 ‘좋다, 남녀노소 다 가거라, 하지만 가축은 두고 가라’고 말했다. 파라오는 철저하게 이 문제를 정치적, 경제적 시각에서 다루는 것이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파라오가 이렇게까지 협상과 양보를 하려는데도 모세가 일절 합의 하지 않자 파라오는 격분하게 된다. 그러나 모세는 이 문제를 민족해방, 노동해방 문제로 이해하고 있는 파라오에게 일침을 가한다:…
하나님이 아니 계신 곳이 없다면 지옥에도 계신다
아무도 지옥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신학자들 중에는 묘한 말로 참된 가르침을 가리우는 자들이 있다. 뉴스앤조이의 톰 라이트의 지옥관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학자들의 특징은 지옥을 ‘하나님과의 단절’, ‘하나님의 방임’, 혹은 ‘하나님의 부재’ 장소로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의 책을 직접 읽지는 않았으나, 기사가 정직하게 쓰여졌다는 가정 아래 파악한 것은 그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큰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것이다 — 설령 지옥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 요한계시록 14:10 위의 굵은 글씨는 졸인이 강조한 것이다. (누가복음 16:23의 예수님 말씀과 비교해 보라.)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주된 청중은 신자들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견고케 하시는데 사용하시는 것이 다름 아닌 복음이라고 말한다 (로마서 16:26). 실상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으로부터 끊임 없이 힘을 얻고 또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각성이 깊어지는 것은 신자들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복음으로서의 능력을 신자들 가운데서 나타낸다. 복음의 주된 청중은 신자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본성상 복음을 싫어하고 오해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늘 복음을 듣고 또 그 깊은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깨닫고 믿어야 하겠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 로마서 15:6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여기에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큰 이유가 나타나 있다; 기독교는 그 최종 목표를 막연하게 신적인 존재에 다가가거나, 깨달음을 얻거나, 혹은 만물을 신이라고 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분명한 대상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데에 두기 때문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경배하기 싫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기록된 문서를 보면 수 천 년 전 이집트의 파라오도 자기 수하에 있던 히브리 종들을 놓아줄 것을 이스라엘의 신(神)께서 명하신다는 모세의 말을 전해 듣고도 무릎 꿇기를 거절하였다. 파라오와 그 신하들은 야훼께서 행하시는 기사를 보고 거기서 신적인 권능을 보았지만 히브리 종들의 신(神)이 자기 머리 위에도…
개신교회는 개혁된 위치에 있는가
미국 개신교는 유럽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이지 자기네 땅에서 어떤 개혁을 통해 수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가 상기시켰다1. 그 미국의 개신교를 전수 받은 것이 한국의 개신교이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된 한 요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이는 교회가 계속 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개혁된 교회는 개혁된 상태에 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개신교가 개혁된 교회의 상태에서 떨어져 있다면, 개혁된 위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실상 한국의 개신교회는 그 초기부터 개혁된 교회의 각성 내용이 희미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종교개혁의 본질, 쟁점, 혹은 정수라고 할 내용이 처음부터 뚜렷하지 못했고 지금도 전체적으로는 그렇다. 예컨대 개혁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로 칼빈은 예배와 복음의 왜곡을 꼽았다. 예배에 대하여서는 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