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시대의 앵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세대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미 시작된 한국 사회의 변화가 향후 한국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교회가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상당한 경우 교회는 사회의 앵무새 노릇을 해왔다. 엘룰(Ellul)의 말을 빌린다: 과거에 교회가 빈곤층을 무시했다면, 지금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이민 노동자들과 가까이 한다. 과거에 독재 정권을 뒷받침했다면, 지금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과거에 절대적 진리와 교리를 주장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가 믿고 싶은대로 믿도록 둔다. 과거에 엄격하고 잔인한 성(性) 도덕을 가르쳤다면, 지금은 낙태와 동성연애를 옹호한다. […] 이것은 진보가 아니다. 교회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동시대 사회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수용했을 뿐이다.…
말씀의 계시로 교회가 생겼기에 성전(聖傳) 역시 성경의 권위 아래 있음 (기독교강요 1.7절)
(1년 완독 계획표가 여기 있습니다.) 1.6절에서 내린 결론 —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 곧 성경을 떠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 — 에 의거하여, 하나님께 대한 바른 깨달음의 최종 권위가 성경에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무리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고, 교회의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지, 역으로 교회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역시 성경의 권위 아래 놓여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에베소서 2:20) 위의 말씀에서 보듯이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한 말씀의 터 위에 세움을 얻었다 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의 부분이 되려면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전해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참 지혜는 말씀의 계시에서 옴 (기독교강요 1.6절)
(1년 완독 계획표가 여기 있습니다.) 1.5 절에서 내린 결론에 의거하여 1.6절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계시가 필수적임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구전 되었다가 기록되었는데 그것이 성경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방식의 종교를 고안하는 유혹에 빠지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유일의 길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편 19:7–8] 하나님께서 초기에는 유대인들에게 그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자와 그에 대한 증거가 유대인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됨을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요한복음 4:22)
기적이 믿음을 주지 못함
기적으로 사람을 믿게 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지상에서 활동하셨을 때 이스라엘 민중은 다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증거한다 해도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가]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누가복음 16장 29-31절) 물론 여기서 “모세와 선지자”라 함은 “토라와 느비임” 곧 성경을 의미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거짓된 태도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사람 중엔 성경에 있는 기록 중엔 사실이 아닌 것이 있으므로 그런 것을 잘 구분하여 참된 것 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사실 아닌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신격화’라고 합니다. 만일 이 주장이 맞다면 차라리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면 거짓말에도 분수가 있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제 3자로서 다른 사람이 저지를 잘못에 대해 그것을 지적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자기”가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는 “자기”의 이름으로 도덕률을 세울 수는 없는 것인데,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남의 잘못을 자신이 용서할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며, 또 자신의 권위로 도덕법을 제정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주의 은혜로 주의 말씀을 지킴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시편 119:11 무엇이 의의 길인지 알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기도 하지만, 이제 내가 느끼는 것은 주의 말씀으로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대적이 나를 취하려 할 때 나는 주의 말씀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주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주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목적 중 하나
“성경이 참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면서 요구하신 바는 ‘네가 네 자신을 중심 삼아서 네 자신의 행복 증진과 네 자신의 향상이나 네 자신의 무엇을 늘 생각하는 그 세계에서 떠나서 나의 자식으로 거하는 세계로 들어와야겠다’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를 증가시키고 자기를 행복스럽게 하고 자기의 고통을 덜어야 하고 자기를 고귀하게 만들어야 하겠다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는 경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 하나님만을 전부로 의지하고 자기가 도무지 없다는 큰 사실이 기저적(基底的)으로 명확해졌느냐 하는 것이 항상 기본적인 일입니다.” — 김홍전, <하나님에 대한 묵상> 아직도 내가 가진 그 무엇을 발휘해야 한다는 단단한 바위가 내 마음 속에 있을 때,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김홍전 목사님의 강설. 그 뒤로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