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름
Wolfius에 의하면 히브리 사회에서 종은 자기 주인을 “아빠”(אבא)라고 혹은 주모를 “아이마”(אימא)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 8:16)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 8:1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4)
성령님의 인도를 생각할 때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안 됨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다면, 거기서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무엇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지’ 찾아야 할 것이다. “아, 저렇게 하면 하나님께 벌을 받고, 이렇게 하면 승승장구하게 해주시는구나”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저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태구나” 배워야 할 것이다. 개개인의 삶을 감시하시며 잘하면 복 주시고 못하면 벌 주시는 옥황상제가 하나님은 아니시다. 만세전에 세우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 위에 펼치시며 그 나라에 반하는 것을 파쇄하시고 당신의 나라를 전진시키신다. 성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전진에 교회의 한 분자로서 나를 가담시키기 위한 것이지, 나 개인으로서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시기 위한 것이 궁극의 목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당장 어디에 가고 무엇을 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을 성신님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태
인도를 받는다는 사실에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다: 첫째,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다는 것이요, 둘째, 그 길을 내가 모른다는 것이요, 셋째, 인도하는 자에게 나를 맡긴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할 때 중요한 추가적 사실은, 나의 어떤 일부분, 또는 내 삶의 어떤 일부분만 인도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마음이 평온하거나, 또는 내 삶의 여정이 편안할 때에는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내 발걸음 가는 데로 그냥 나갈 뿐이다. 그렇게 해나가다가 뭔가 난감할 때, 마음에 요동이 올 때, 그제서야 성령님께 맡긴답시고 기도해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 처럼 이리 저리 흔들리시는 분이 아니시다. 전체를 번제로 드리지 않고 일부만 드리면서 입으로는 주의 인도를 받길 원하고 그 인도하심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더러운 거짓말이요,…
성령님만 의지하는 생활
성신을 의지해서 나갈 때에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성신님을 부여잡는 간절한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혹은 속으로 끊임없이 ‘아, 아버지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내가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하다가는 또 넘어지겠습니다.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나를 꼭 붙들어 주옵소서. 나는 주님만 의지합니다. 무엇이 나를 지탱해서 하나님의 자식다운 거룩한 품성을 나타내겠습니까? 내가 훌륭하지 못할지라도 내 장성의 분량에 합당한 만치는 하나님 자식답게 이제 나타내야겠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하는 간절한 마음의 요구가, 그런 기도가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무엇도 의지해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다만 성신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돈이나 권력이나 다른 어떠한 경우나 자기의 꾀나 기타 그러한 것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꾀를 부려서 아마 이렇게 하면 용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