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 Theology

    종교다원주의의 실천적 반증

    전에 에서는 종교다원주의의 가르침이 왜 기독교에 잘 적용이 되지 않는지 간단히 적었다. 여기서는 종교다원주의가 왜 잘못되었는지 실천적인 면을 언급하고자 한다. 사람이 지니는 신념은 인격의 일부를 이루고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를 이룬다. 한 사회도 그 주도적인 사상에 의해 만들어 내는 역사가 달라진다. 칼빈주의, 로마 가톨릭, 이슬람, 불교가 번성했던 각 사회와 그 역사를 보면 이 사상들이 뚜렷하게 구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실천이 이론의 진실됨과 신빙성을 실증한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성경도 실천이 믿음의 질을을 실증한다고 말한다. 믿음이 있는데도 실천이 못 따라 주어서 구원을 못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변화가 없는 것은 애초에 구원의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각 사상이 이루어내는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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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전통적인 신앙에 대한 오해

    베니 힌(Benny Hinn)이라는 사람은 상당히 신비주의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책 <안녕하세요 성령님>에 대한 어떤 독자의 평에서 그가 “전통적인 신앙”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읽고 당장에 든 생각은 ‘전통적 신앙’에 대한 오해가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자기가 평소에 들어본 것이 아니면 “새로운 것”, 자기가 평소에 교회에서 많이 들은 얘기라면 “전통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평소에 많이 들은 것 중에도 비전통적인 것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예를 많이 들 수 있는데, 하나 들자면 `구약은 율법 시대였고 신약은 은혜 시대다, 구약은 성부 시대였고 신약은 성령 시대다’는 식의 세대주의 해석; 또 들자면 `하나님은 구원을 마련하실 뿐이고 그것을 붙잡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는 알미니안주의; 너무도 많은 오해와 불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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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도 | Apostasy

    역사적 신앙과 이단

    이단이라고 판정된 교회들에 있는 사람들과 소위 정통 교회에 있다고 하는 신자들의 논쟁을 살펴보았다. 발견한 것은, 정통 교회에 있다는 사람들도 서로 조금씩 얘기가 다르고 (알미니안주의와 개혁주의가 섞여 있는 것은 예사다), 이단 교회에 있다는 사람들도 자기네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성경교사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갖고 자기네 교회의 변호를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과 더불어 현대를 장악하고 있는 정신 문화의 풍조(trend)를 — 거기에는 그리스도교계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는데 — 종합해서 보면, 지금은 평등주의(egalitarianism)의 극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여기 가면 이 사람이 “이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말씀의 뜻이다”, 저기 가면 저 사람이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의미이고 구원의 모습이다”, 또 다른데 가면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모습이라”며, 수 많은 주장들이 나와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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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배도 | Apostasy,  복음 | Gospel

    역사적 신앙고백과 이단

    요새 구원파의 주장에 조금 관심을 가져봤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왜 이단인가 아닌가 토론하는 곳에도 가봤다. 이단이던 아니던, 내 마음을 항상 무겁게 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만 옳다”는 주장들이다. “…이래야만 참 교회고 … 이래야만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이다.” 이런 식의 주장들이 특히 복음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때면 더더욱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냐면, 대개의 경우 그런 말들을 하는 심저는 자기가 구원받은 어떤 증거를 자기 안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믿음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내게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구원 받은 증거로 삼으려고 하는 노력일 때가 참으로 많다. 물론 영생이 있는 사람은 그 생생한 현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영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오히려 자기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본말을 전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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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역사적 신앙의 부재

    옥한음 목사님의 현실 비판에서 값싼 복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살아 생전 무엇을 하더라도 믿음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값싼 복음이 교회에서 설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이것은 값싼 복음 정도가 아니라 변질된 복음, 다른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고 본다. 왜? 우리가 성경을 통해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배운 참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큰 죄책이 각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노력을 해도, 윤리의 히말라야를 오른다 해도, 하늘에 있는 달과 같이 저 높은 하나님 나라의 생활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날이 더 부채를 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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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앙고백 | Confessions

    역사적 개혁 신앙을 이야기 하는 이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믿은 후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과 내가 신비롭게 연합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이 나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는 나 뿐만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연합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5:31-32)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온 성도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하기도 한다. 지금 “눈에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일부분으로서 우리 시대의 교회이다. 이렇게 교회가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는 나타나는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시대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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