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on with Christ
그리스도와 신자의 신비로운 연합(unio mystica)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의 순종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것은 곧 우리의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 때 개혁자들은 사람의 공로와 무관하게 오직 그리스도의 공효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고백했다. 그랬더니 로마의 교황을 머리로 한 교도권은 ‘이것은 복음이 아니며, 그렇게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지체라고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하느님에게서 계시 된 것이라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오류가 없으며, 오고 오는 신자들이 믿고 신앙의 순종으로 따라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이렇게 하여 추방되고 파면된 사람들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보존 되었고, 그 신앙고백 위에 개혁교회(개신교회)가 서 나왔다. 로마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이 참으로 위험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였고, 개혁자들은 목숨을 담보로 ‘오직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같은 죄를 계속 지어도 구원 받았나요?
회개를 주제로 하여 개혁주의의 핵심—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30여 분 짜리 녹음이 있습니다. 거기서 다루는 내용 중 몇 가지만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와 성화는 다른 것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회개는 “change of mind”이고, 성화는 “change of life”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죄의 심히 죄된 것을 아는 것이고 슬퍼하는 것이고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회개와 성화가 비슷한 부분도 있다; 둘 다 믿음의 열매이고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결과로 생긴 것이다; 둘 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다; 참된 회개와 성화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발생하는 것이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다.
에스더 왕비 보다 더 아름다운 분
이스라엘 민족에게 “푸림”(פורים) 절기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지요. 이날은 페르시아 제국 아래 있을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려던 하만(המן) 장군의 계략으로 부터 에스더 왕비의 활약으로 구원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에스더 왕비는 이스라엘 사람이었는데, 뛰어난 미모로 아하수에르(Xerxes) 대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만 장군의 계략으로 부터 무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의 사촌인 모르드개는 그녀가 아하수에르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여 민족을 구하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페르시아 법에 의하면 왕이 부르지 않은 사람이 왕의 안 뜰에 들어올 경우 죽이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일한 예외는 왕이 황금 홀을 내밀어 그를 용납할 때입니다. 30일이 지나도록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갔다가 자기 목숨을 잃고 민족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한 후 왕에게 나아갑니다. 다행히도 왕은…
방언, 신유, 은사, 천사 등을 내세우는 거짓
그리스도 예수의 공효와 그를 향한 믿음이, 성도를 하나님 앞에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세움을 믿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 골로새서 1장 中…
그리스도의 탁월함
우리의 고백도, 회개도, 의지도, 모든 것이 불완전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받아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이웃집 영감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십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개인의 가치를 최고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요한복음 10장 3절을 보면 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양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양 하나 하나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아신 예수께서는 개인을 군중의 부품 같이 취급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각 사람의 개성과 필요를 다 아시고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나 하나와 예수님을 비교하자면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온 인류와 예수님을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과도 예수님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분 앞에서는 나는 찌끼 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개인의 가치를 전체 속에 파묻어서는 안 되지만, 그 가치가 가장 높은 가치는 아닙니다. 나 한 사람 보다 예수님이 더 중요하고 내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예수님의 몸이 지체인 나 보다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할 때에도 아드님…
자기 백성을 향한 구주님의 마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다 보시는 구주님의 마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아버님, 도우시옵소서.. 사소한 일에서 제 자신의 선한 의지나 도덕률로 하나님을 섬기려 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아직 알지 못하고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입지 못할 때가 허다합니다. 저의 가난함과 무력함을 매사에 알고 성신님만을 의지케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오직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리스도로 채워져 그리스도로 저의 부요함이 되게 하시옵소서.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