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는 하나다 (유아세례와 성인세례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음)
언약신학의 기본적인 내용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언약의 확실함을 알리시는 방도 중 하나로 눈에 보이는 예식들을 제정하셨다. 이러한 성례전(聖禮典)들은 언약공동체에게 주신 언약의 표(表, sign)가 된다. 그 표가 상징하는 것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인(印, seal)으로서도 작용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할례와 유월절 만찬이 언약공동체에게 주신 성례전이었다. 할례는 입문 (enterance) 예식이고, 유월절은 새롭게 (renewal) 하는 예식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할례와 유월절 만찬을 새롭게 하신 것이 세례와 성찬이다. 구약과 신약의 구분은 언약을 성취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후의 시기적 구분이지, 두 개의 다른 언약을 믿은 것이 아니다. 구약과 신약의 교회는 시공간을 넘어 동일한 언약을 믿는 하나의 언약공동체이다. 그러므로 할례, 유월절, 세례, 성찬 모두 동일한 언약의 성례전들이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성례전 시행에 있어 세부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어도 큰…
가정과 하나님 나라의 소명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사회가 가정인데, 죄가 들어와서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 김헌수, “두 가지 가정 예배“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사회가 안정된 가정에 터를 두기 보다는 직장과 돈(맘몬)에 터를 잡고 일어서려고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아이는 사회가 맡아서 길러줄테니 어찌해서든 부모를 일터로 불러내려고 한다. 실상 가정에서 바른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 보다는 자기가 찾은, 자기가 더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우선을 두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그런다고 해서 언약의 백성들 조차 거기에 휩쓸려 가서는 안 된다.
‘아이의 사생활’ 그리고 유태인 자녀교육
“유태인 자녀교육” —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말입니다. 그에 대한 얘기를 저도 많이 들었지만, 항상 표면적인 차이를 이야기할 뿐이고, 근원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믿는 저로서는 “유태인들은 성경을 중심으로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 역시 표면적인 이야기이고, 도대체 성경 중심의 교육의 그 무엇이 교육적 효과를 가져오는가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근래에 EBS에서 방영한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한국인과 종종 비교 되는 유태인들의 자녀교육의 근원적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할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그것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잠시 유대 민족이 인류에 끼친 유익을 언급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교, 철학, 윤리와 관련한 역사적인 큰 줄기 두 개가 있다면, 진리는 외부에서 전해진다는 계시 문화, 그리고 진리는 내면을 탐구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부모와 자녀 관계 (2)
자식을 기르되 자식 개인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서 개인 개인의 인격이 구김살 없이 하나님의 자식답게 장성하도록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내 의사로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어려서 자기 은사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누군가 늘 돌아보아야 하고, 누군가 대행해 줘야 할 때의 일입니다. 큰 다음에는 부모의 의사로 자녀를 주장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진리를 가졌을지라도 성신님께서 그 진리를 쓰셔서 자녀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기만 바라는 것뿐이지, 강요한다고 해서 진리가 그 속에 들어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즉, 자녀가 성인이 되고 자기 주장을 가진 사회인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진리를 전하려고 하더라도 다른 사회인에게 전하는 것같이 전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렸을 때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또 의지하는…
하나님 나라의 부모와 자녀 관계 (1)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자녀 관계를 상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상속자라든지 상속을 시키겠다는 기업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가장 어른이 되시는 까닭에 가장(家長)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신 그 가정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그랬습니다. 그런고로 교회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 것인가 할 때,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시고 있는 한 집안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교회가 일종의 집안이라면, 그 실례(實例)는 가정에 있습니다…이 사실은 우리의 가정 생활에 중요한 도덕적인 의무를 깨우쳐 줍니다. 먼저, 부모가 자녀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생각하면서 자녀를 대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곧 자녀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