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하-타르스키 역설과 제한속죄 (Banach–Tarski Paradox and Limited Atonement)
[한글 번역은 아래에] Even the Reformed Christians struggle with the doctrine of Limited Atonement with the verse like “He [Jesus]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and not for ours only but also for the sins of the whole world.” (1 John 2:2). The issue is that “If” Jesus paid the debt of the sins of the whole world, then God has no reason to punish anyone. But we clearly observe—both empirically and scripturally—that universal salvation is not true. But 1 John 2:2 seems to suggest the contrary. The resolution of this apparent contradiction is that the quality of the propitiation Jesus prepared through his suffering on the cross is…
복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란 사실과 제한속죄는 모순인가
이 글에서는 ‘제한속죄’와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이라는 명제가 왜 모순이 아닌지 추적하려고 한다. (1) 제한속죄의 의미를 돌아봄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14-15,27-29) 그리스도께서는 성부(聖父)께서 그에게 주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고, 그 양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위하신 양들은 하나도 잃어버림이 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이것이 개혁자들이 제한구속(limited redemption)이라는 제목으로 이름 붙인 내용의 핵심이다. 다시…
제한속죄와 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값을 하나님께 지불하셨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책 까지 다 주님은 대신 받으셨다. 그것은 2000년 전의 일이었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그것은 이미 뚜렷한 사실로 서있는 것이고 단지 나는 시간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은혜가 내게는 2000년 후인 지금 임하였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를 기다리셨다가 이제 비로소 2000년 전의 예수님의 그 죽음을 나를 대신한 죽음으로 인정해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이미 그 안에서 창세 이후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의 죄 값을 하나님은 예수님에게서 받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것일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죄인들의 죄 값을 받으셨으므로 그 누구도 지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