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배할 권리
독일에 온지 4주가 되었다. 여기 와서 처음에 해야 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주일에 예배하기 위한 교회를 찾는 것이었다. 고려할 것이 몇 가지 있겠지만 (전에 이와 을 올린 적이 있다) 오늘 적고 싶은 것은 예배 방식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 방식에 관심이 있으시다. 십계명에 보면 (구체적으로는 출애굽기 20:4-5)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관련된 사건으로 유명한 것이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다 —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지 한참을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은 금을 모아 아론을 시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한 것은 자기네들을 위한 새로운 신(神)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자기네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하나님으로 여기기 위한 것이었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쓰려고 만든 것이었다 (출애굽기 32:4-5).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크게…
주의 영광의 찬송으로서 존재함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이사야 55:8)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에 대해 사람은 무척이나 고민하거나, 반대로 늘 착심하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꿈꾸듯 지나갈 때가 너무나 많다.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고침 받고,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과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작정하신 그분의 경륜, 그리고 그 속에서 구속 받은 한 분자로서의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주를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우리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2–13) 주께 기쁨이 되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살 자격이 없는 것이 우리다. 그것이…
시편 찬송
처음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을 때 조금 낯설었던 것은 시편으로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런 것에서 사람이 자라나온 문화와 배경이라는 것이 참 단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약 2 년이 지난 지금, 시편 찬송을 대하는 내 마음은 많이 달라졌다. (이런 것에서 사람이 몸 담고 있는 문화와 배경의 위력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제는 오히려 예배 때 시편으로 찬송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찬송가들의 감화와 감동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음악성만 따지자면 우리 교회가 사용하는 시편 곡들은 조금 투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많이 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시편의 내용들을 곱씹어 가며 찬송으로 불러보았을 때 비로소 느끼는 시편의 그 비류 없는 독특성이 있다는 것 뿐이다. 시편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높으심이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
주여, 그 긍휼로
주여, 그 긍휼로 — 김홍전 주여, 나의 구주 예수여, 그 무한하신 긍휼로 제 죄를 사유하여 주시고 또 씻어 주소서. 곧 저는 죄인이오며 제 죄를 제가 아옵나이다. 주 예수 크신 사랑 의지하고 나왔나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모두 아시니, 날마다 저의 짐을 지시며 그 크신 권능으로 저를 붙드사 내 주만 따라가게 하소서. 구원의 즐거움을 제 안에 곧 가득하게 하시고, 제 속에 지혜를 알게 하여 주시사 주의 나라 큰 영광에, 영원한 그 영광에 제가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영원한 구주이신 예수님, 그 무한 자비하신 손으로 제 몸과 마음을 붙드사 주님만 섬기게 하소서. 주께서 제게 내린 사랑과 영원하신 주의 영광, 제 맘에 항상 사모하며 찬양하오니 받아줍소서. 요즘 자주 부르는 찬송이다. 솔직히, 이런 찬송을 부를 자격도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