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제네바에서의 폭정(?)
만나교회의 김병삼 목사가 말하길: “칼빈은 종교국을 통해서 신정정치를 구현했다. 그의 신정정치는 엄격했고 가혹했다. 처음 5년 동안 13명이 교수대에서 죽었고, 10명이 목이 잘렸고, 35명이 화형당했고, 76명이 추방당했다. 오죽하면 감방마다 죄수로 가득차서 간수장이 시당국에 단 한 명의 죄수도 더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할 정도였다.” 헛소문을 사실인지 확인도 안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칼빈(칼뱅)이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구현하고 폭정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돌아다니기는 하나,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저질 정보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출처를 제시하라고 하면 열이면 열 세바스챤 카스텔리오 혹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을 지목한다. 카스텔리오의 글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면서 쓴 글로서 자기 선전물로서는 기교가 넘치는 글이지만 역사적 사건들을 신빙성 있게 기록한 사료로서는 가치가 떨어지는 글이다. 츠바이크는 소설가이자 가톨릭 신자로서, 그의 글은…
종교개혁 역사에 관한 간략하고 알찬 강의
교회와 신앙고백을 둘러싼 역사의 공부는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도 필요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전진해온 역사에 대한 공부가 된다. 하지만 주위에는 잘못된 정보들이 너무나 많이 돌아다닌다. 이런 때에 켈리포니아 소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총장이자 교회사 교수로 제직 중인 로버트 갓프리 (W. R. Godfrey) 박사의 강의 몇몇이 리고니에(ligonier.org)에 올라왔다. 간략하지만 알찬 강의들이다. 듣는데 시간이 아깝지 않다. (아쉽지만 영어로 되어 있다. 한국에도 이런 강의들이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 From the German Reformation to Calvin (루터부터 칼빈까지) John Calvin & Geneva (칼빈과 제네바) The Theology of John Calvin (칼빈의 신학) The Catholic Reformation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 The Scottish Reformation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The Dutch Reformation (네덜란드의 종교개혁) The Synod of Dort (도르트 총회)
신자의 삶에 대한 칼빈의 사상
신자의 삶에 대한 칼빈의 태도 혹은 신학에 대하여 근래에 마이클 호튼 (M. Horton) 교수가 책을 냈다. 읽어보고 싶었는데, 관련된 인터뷰들 몇몇을 읽고 혹은 듣고 그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책에 대한 추천사에서 싱클레어 퍼거슨 (S. B. Ferguson) 교수는 경고(?)를 하고 있는데, 신자의 삶에 대한 칼빈의 사상에 관한 책이라고 읽기 시작하지만 곧 칼빈의 신학 전체를 맛보게 되는 책이라 한다. 과연 그렇다. 그것이 참 신앙, 참 신학,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개혁 신앙과 그 신학이다 — 한 두 마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복음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깊이는 우주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항간에는 소위 ‘칼빈주의 5대강령’과 같은 말들이 돌아다니지만 그런 것들이 얼마나 신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잘못된 표현인지를 생각할…
성경을 더 읽자 (중)
지난 글에서 성경을 읽는 방식으로 숲을 두루 두루 살피는 방식과 나뭇잎 하나 하나을 들춰 보는 방식의 읽기가 병행 되어야 함을 언급했다. 편의상 전자를 성경통독, 후자를 성경공부라고 지칭하겠다. 이번 글에서는 성경통독과 성경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졸인이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려 한다. 주일과 토요일은 성경공부를 위해 따로 떼어놓는다 돌려 말하자면 성경통독은 주중에 한다. 성경 공부는 주께서 그 분의 교회를 위해 성경 교사로 세우셨다는 증거를 역사 속에서 보인 사람들의 강설과 주석을 이용한다. 영어로 된 자료들 중에 졸인이 애용하는 것은 칼빈의 주석들이다. 국어로 된 자료 중에는 단연 김홍전 박사의 강설들이다. 김홍전 박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박사님이 성경 공부를 할 때 사용했던 큰 주제 다섯 가지를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이전 글에서 성경의 가르침은 체계적이어서 순서 있게 공부하는 것이 마땅함을 언급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칼빈 선생은 로마서 14:17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아니하므로 형제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 나라의 혜택을 못 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칼빈 선생의 성경을 읽는 깊은 눈을 다시 한 번 본다. 성신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기쁨”이라고 한 것은 그 기쁨 혹은 즐거움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나타낸다고 칼빈은 또한 이야기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로 인해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자의 기쁨이다. 세상은 이런 저런 기쁨에 대해 이야기들을 하지만, 양심 깊은 곳에서 자리잡은 나의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는 한 그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기쁨에 불과한 것이다.
로마서 14:13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칼빈 선생은 로마서 14:13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네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음식은 없으니 만큼, 음식 보다는 도리어 형제들에게 마음을 쓰고, 음식을 구별하여 먹던 구별 없이 먹던 주께서 형제들에게 주신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칼빈 선생의 성경을 읽는 깊은 눈을 감사히 받는다.
Calvin on Romans 7:24-25
And further, lest they should indulge their torpor, Paul, by his own example, stimulates them to anxious groanings, and bids them, as long as they sojourn on earth, to desire death, as the only true remedy to their evils; and this is the right object in desiring death. Despair does indeed drive the profane often to such a wish; but they strangely desire death, because they are weary of the present life, and not because they loathe their iniquity. But it must be added, that though the faithful level at the true mark, they are not yet carried away by an unbridled desire in wishing for death, but submit themsel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