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기독교인의 전형들

    열두 사도라는 이름은 우리가 존중히 여기고 얼른 높이는 것이지만, 개별적으로 가만히 따지고 보면 아까 이야기한 것과 같이 우리가 그 이름을 몇 사람이나 기억하고 있는가 의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인데, 이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무의미하고 희미한, 즉 무명무색한 사람들인가? 그렇게 무명무색한 사람들을 주께서 데리고 무엇을 하시려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이름이 없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참으로 기독교인의 한 전형적(典型的)인 예를 내놓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전형의 예라는 것은 뭐냐 하면,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해서 세상의 명예나 찬양이나 보상과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신실하게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고 그리고 자기에게 주신 바 임무를 그것이 작고 크고 간에 상관할 것 없이 충성스럽게 하려는 그것입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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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거듭난 사람의 생활 자태

    하나님의 자녀가 장성하는 자태는 말씀이 들어가면 성신님이 그 말씀을 쓰셔서 그에게 힘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각오와 각성이 있게 하셔서 그가 ‘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하려 해도 그 일은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네 힘으로도 못하고 능력으로도 못하고 오직 성신으로만 하는 것이다”(슥 4:6) 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신을 좇아 행하라”(갈 5:16). 성신님을 의지하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대로 내가 “아니요” 하고 반대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령하고 거룩한 자태와 하나님 자식다운 자태를 생활 가운데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종교나 혹은 세상의 도덕이 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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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심정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느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한 사람이 중생하였다는 말은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생명 곧 영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요 10:28). 이 새생명으로 말미암은 새사람은 그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를(골 3:4)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중생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실의 한 가지입니다. 중생한 자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있으니까 더 사랑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마 10:37). 여기에서 너희 부모나 처자나 형제를 사랑하는 식으로 나를 사랑하지 말고 별다른 식으로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부모나 처자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연장해서 더 열렬하게 나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는 내가 부모, 형제, 친구를 얼마만큼 사랑하는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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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하나님 나라의 도덕은 결코 개인의 완성을 추구하지 않음

    여기서 우리가 중요히 생각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에게 선하라든지 의로우라든지 진실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요컨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각고면려하고 노력해서 의나 선이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종교가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종교도 정통이나 복음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고 아름답고 진실하라 할 때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경계냐 하면 성경은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스스로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본질적인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이것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저것밖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롬 7:19 참조) 그런고로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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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예수님께서 지니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

    예수님께서 시험을 물리치실 때 중요한 문제로 드신 것은 하나님을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진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배고픈 것은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무시하고 자기의 지혜를 믿고 신통력을 발휘해서 미리 전시하는 것도 아니고, 또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를 나누어서 하나님께도 드리고 다른 것에게도 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큰 글자라는 사실이야 말로 예수님이 항상 가장 강한 근거로서 유지하려 했던 명확하고 찬연하게 비치는 보루와 요새였습니다. 예수님은 늘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 김홍전,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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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신학 | Theology

    주의 은혜로 주의 말씀을 지킴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시편 119:11 무엇이 의의 길인지 알기 위해서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기도 하지만, 이제 내가 느끼는 것은 주의 말씀으로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대적이 나를 취하려 할 때 나는 주의 말씀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주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주의 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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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속하여 있는 사람과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세상이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은 애통이다. 세상의 전체적인 조직은 바로 그것을 피하기 위한 어떤 것이라는 전제 하에 되어진 것이다. 인생의 전체적인 조직, 쾌락에 도취되어 있는 것, 오락을 즐기는 사람 안에서 확장되어 가고 있는 열심과 에너지, 돈은 세상이 애통하고 비통해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큰 목적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말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실로 행복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 뿐이다! 이는 세상에서는 결단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는 신약의 교회들과는 달리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사람들로 보이려면 의도적으로 우리는 밝고 즐거움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사상이 인기를 얻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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