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왕권
역사서를 볼 때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 열두 권의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거룩한 통치의 대상인 나라에 대해 주로 가르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중심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정치, 즉 신정(神政)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누구의 정치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정치입니다. 이처럼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권이 나타나는 또 한 가지의 면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왕은 왕권을 행사하기 위한 지역과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왕의 대권, 통치의 대권을 행사하시는 지역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고, 그 대상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신 백성 위에 행사하시는 통치 대권의 특성은 무엇인가 할 대 그것은 은혜와 진리와 공의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것을 ‘은혜의 왕국’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하는데 신학 용어로는 레그눔 그라티아에(regnum gratiae)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부모와 자녀 관계 (2)
자식을 기르되 자식 개인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서 개인 개인의 인격이 구김살 없이 하나님의 자식답게 장성하도록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내 의사로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어려서 자기 은사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누군가 늘 돌아보아야 하고, 누군가 대행해 줘야 할 때의 일입니다. 큰 다음에는 부모의 의사로 자녀를 주장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진리를 가졌을지라도 성신님께서 그 진리를 쓰셔서 자녀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기만 바라는 것뿐이지, 강요한다고 해서 진리가 그 속에 들어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즉, 자녀가 성인이 되고 자기 주장을 가진 사회인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진리를 전하려고 하더라도 다른 사회인에게 전하는 것같이 전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렸을 때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또 의지하는…
가정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을 길러내는 그릇
그리스도인 부부가 혼인을 하고 자녀를 낳음으로써 갖는 우선적인 특권은 세상 사람과 같이 단위 사회를 만들어 공동의 생활을 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생물적인 생육과 번성을 통해 가세(家勢)를 확장하는 데에도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가정을 이 땅에 두시사 세상 앞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써 구원과 심판의 도전을 제시하시려는 뜻에 있으며, 또한 그러한 일을 역사상 끊임없이 계속해 나가시기 위해서 당신의 백성을 그런 가정 안에서 기름을 받게 하시려는 뜻에 있습니다. 가정은 그런 거룩한 뜻을 이루시려는 데에 그릇으로 쓰입니다. […] 그러나 모든 가정이 그런 임무를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육이 없는 집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에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의 의미 (에베소서 5:22)
여기서 주의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순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든 하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자기의 의식을 다 버린 채 무감각한 기계가 돼 가지고 ‘이렇게 하라’ 하면 ‘예’, ‘저렇게 하라’ 하면 ‘예’, 그렇게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뜻을 더욱 궁구하고 살펴서, 그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식별해서, 그래서 우리가 알았을 때는 자진해서 즐겁게 성신님을 의지하여 순종하고 나갑니까? 그것은 물론 그렇게 자기가 인식하고 각성하여 자기가 확신한 다음에, 이번에는 자기가 성신님을 의지해서 자진해서 순종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이요, 그렇지 않으면 기계적인 굴종일 뿐입니다. 성경이 아내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기 남편에게 굴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참된 가정, 그리고 교회
가정은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상적인 관계를 목표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그 이상적인 관계를 예표 해주는 존재로 있는 것이 바로 보이는 교회[有形敎會]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보이는 교회의 기초적인 단위로서, 언제나 교회의 건실한 세포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정과 교회라는 말을 생각할 때 주의해야 할 문제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모든 관계가 이 세상에서 보게 되는 현상의 가정에서 다 발생하거나 확연히 다 확인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지니는 독특한 현상을 반드시 교회 안에서 다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교회가 모든 부면(部面)에서 가정의 의상형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영원하고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고 땅에 있되 하나의 교회인 것입니다. 가정은 하늘 위에 있지 않고 오직 땅에만…
종합적이고 견고한 부부의 사랑
그리고 사랑이 중요하다고 그랬는데, 그 사랑이 [부부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양을 나타내는 중요한 또 한 가지입니다. 그것이 독처하는 사람에게서는 존재하지 않다가 대상이 있음으로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야 세상에 사람이 많으니까 혼인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을 못한다는 법이 없으나, 혼인을 안 했을 때의 사랑은 부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혼인을 안 했을 때는 이성(異性)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에로스의 사랑입니다. 거기에 또 봉사하는 아가페의 사랑이 붙어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친족의 사랑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혈통적인 사랑은 아직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차라리 플라토닉하고, 그리워하고, 위하여 목숨이라도 다 주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위하여 목숨을 주겠다는 것은 반드시 혈통적인 사랑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박애(博愛)에도 있는 것이고, 남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까지라도 다 버릴 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창조주, 구주, 주 혹은 왕이라는 칭호로 표현합니다. 창조주라고 할 때는 피조물의 입장에서, 구주라고 할 때는 구원받은 죄인의 입장에서, 주리고 할 때는 종의 입장에서, 왕이라고 할 때는 다스림을 받는 백성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이와 아울러 또 한 가지 보편적으로 쓰는 표현은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때 그것은 성부, 성자, 성신 가운데 성부의 위(位)만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 대해서 보편적으로 부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때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실 때에는 그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실 때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켜 하신 것이지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하실 때는 반드시 성부께 대한 칭호인 것보다도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칭호로서 쓰시는 경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