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생활의 의미와 자태
무엇이나 주를 위하여 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출애굽기를 배우면서 생각한 대로 거룩한 위치에 서 있는 생활입니다. 어떤 위치냐 하면 주를 위하여 사는 인생의 위치입니다.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그 뜻을 위해 우리를 세상에서 뽑아내사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6:18에도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사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 베드로전서 1:15-16에서는 레위기 11:44을 인용하여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생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우리가 중요히 생각할 말씀으로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믿음으로 행하는 자태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하는 말을 해석하는 중인데, 그러면 믿음으로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를 지금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내가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어디를 가면 거기에 갈 이유와 어떤 목적이 있고 가서 무엇을 하겠다든지 무엇을 이루겠다든지 하는 특별한 동기나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와 목적이라는 지적(知的) 내용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나와야 하느냐 하면 믿음의 요소인 하나님께 대한 지식에 근거를 두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에 근거를 둔다는 것이 첫째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믿음으로 한다는 말이 다 성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요소인 지식은 그것이 믿음의 요소가 되기 전에는 그냥 지식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성경을 통해서 나의 사색과 진실한 연구 과정…
교리의 배교만이 배교가 아니다
여기 마태복음의 이 종말론 이야기 가운데에서는 복음이 만방에 전파된다는 것, 그래서 모든 민족이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된다는 것, 그 다음에 장기간일는지는 몰라도 좌우간 환난과 핍박과 고통–이것은 소위 대환난(the great tribulation)이라고 하는 것인데–그것이 또한 올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회의 불안뿐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 보이는 형식의 교회 안에서도 사랑이 식고 미워하는 일들이 자꾸 생길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 일이 자꾸 퍼져 나가는 것이 결국 배교해 가는 길입니다. 배교라는 것이 교리만 가지고 자꾸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를 백번 잘 믿는다고 하고 정통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서로 미워하고 또한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심정이 없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내가 이것을 참아야겠다든지 저것은 내가 꼭 해야겠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없으면 그것은 결국 배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은 심장을 살피심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타내는 것을 봄으로써 그 사람을 알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시는 분이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 하나님께서는 또 결코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지 아니하신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참조. 삼상 16:7, 롬 2:11, 엡 6:9)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참 자태를 평가하시는 데 사람의 행위 여하를 기다리실 필요가 없다. – 김홍전, “복음이란 무엇인가” 中
단지 종교적 사실을 아는 것뿐으로는 (역사 신앙)
믿어야 할 것을 믿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신앙의 내용은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종교적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 그대로 구원의 신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이 말씀은 사람이 훌륭한 내용을 믿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대로 그의 구원의 보증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주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시고 이 세상에 계실 때, 귀신 들린 많은 사람들에게도 접근하셨다. 예수님께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에는 예수님이 참으로 어떠하신 분인지를 잘 알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님을 바르게 대접하지를 못하였다. 오히려 귀신 들린 사람들 편에서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즉시 깨닫고 그렇게 고백하였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성경 말씀에서 때때로 볼 수 있다. […] 당시에 성경 해석의…
자기 종교관을 주의할 것
사실, 주와 같이 먹고 마셨다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주께서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눅 13:27)고 말씀하셨는데 대체 왜 그러셨을까? 이 사람들은 그 집의 주인이 문을 닫은 후 “주인이여 청컨대 열어 주소서”(눅 13:25)하고 청했다. 결국 문을 닫아 버린 후에 와서 문밖에서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이는 구원에 들어가는 데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와 방법이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정하신 바를 변역함은 바른 하나님의 법에 위해되는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움직여 보려든지, 자신의 천박한 종교적 감정이나 지식에 의하여 하나님을 해석하고 이를 하나님은 당연히 들어 주시는 것으로 기대하고 강요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에 의한 것도 아니요 또 구원받은 증거도 되지…
바울이 복음을 다시 가르친 이유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 15:1) […]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라고 하고 있다. 바울은 이미 복음을 들은 사람들, 즉 복음을 듣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또 복음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시 “복음을 알게 하노니”라고 말하고 있다. […] 그러나 복음은 즐거운 소식이다. 즉, 항상 즐거운 소식인 것이다. 복음이 어제 진정으로 즐거운 소식이었던 사람에게는 오늘도 또한 그렇지 않으면 아니 되고 내일도 또한 즐거운 소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복음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과연 즐거운 소식이 되어 있는가? 많은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복음이 반드시 변함 없는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되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경우 많은 신자들은 복음을 다시…


